원진 직업병 환자들이 전문병원의 설립을 요구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환자들이 찾아갈 병원이 없다. 고려대병원, 경희의료원, 기독병원, 사당의원 등 원진 환자들이 찾는 병원은 10여 군데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느 한군데도 이들을 전문적으로, 안정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없는 실정이다.
현재 입원치료가 필요한 중증환자 32명 가운데 입원치료중인 사람은 6명뿐인데, 이는 병원측이 "병실이 없거나 진료수입과 병실회전율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원진 환자들의 입원을 기피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치성(40) 씨는 "병원에 가면 검진만 하고 나서 퇴원을 종용한다. 발병 이후 병원을 네 군데나 들락거렸다"고 밝혔다.
또한 환자들이 분산되어 치료를 받는 까닭에 원진 직업병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검진,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성수의원의 양길승 원장은 "일반 병원치료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으며, 재활대책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원진 직업병 전문병원이 아니면 이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숫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현재까지 사망자 23명을 포함해 직업병 판정을 받은 사람은 6백66명에 달하지만, 10년 후엔 그 숫자가 2배 이상이 될 전망이다. 양길승 원장은 "매년 새롭게 검진 받는 사람 숫자와 직업병 판정율을 고려할 때, 향후 10년간 7백50명 정도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서도 가까운 장소에 전문병원이 설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환자들의 90%는 구리지역에 살고 있는데, 이들은 "먼 거리의 병원까지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때문에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원진피해자 치료 사례>
·87년 직업병 판정을 받은 김용윤(51) 씨는 발병 당시만해도 목발에 의지한 채로나마 활동이 가능했고 자기주장을 활발히 개진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김 씨에겐 전신마비 증상과 언어장애가 나타났고 현재 김 씨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김 씨는 처음 고대부속병원 입원후, 기독병원(89년), 사당의원(91년), 기독병원(92년)을 전전하고 현재는 집에서 요양중이다.
·박수일(56) 씨는 91년 직업병 판정을 받고 요양을 하던 중, 2년뒤 전신마비와 언어장애를 일으켜 고대부속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게 됐다. 그러나, 병실 관계로 3회에 걸쳐 입·퇴원을 반복했으며, 최근 병세가 너무 악화되어 고대 구로병원에 입원했으나 위독한 상황이다.
·90년 직업병 판정을 받은 이정남(52) 씨는 병세가 호전되지 않고 병실에 장기입원했던 관계로 퇴원했다. 반신 불구인 몸으로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하지만, 약을 타오는 이외에 별다른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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