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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한 조선족 동포의 편지>

“선장의 폭력행위에 대한 재판 먼저”

<편집자주> 페스카마호 선상반란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 이어 지난 9일 항소심 공판에서도 사형을 구형 받은 전재천 씨 등 조선족 선원 6명의 선고일이 18일로 다가왔다. 국내에서는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등에서 이들을 돕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족 사회에서 과연 페스카마호 사건이 어떠한 반향을 가져왔는지 한 조선족 동포의 편지를 통해 읽어본다. 현지에서는 <료녕조선문보>에 실린 피고인들의 글이나 관련보도를 접한 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이들의 석방을 탄원하고 나섰다. 이들의 탄원편지에는 사건발생의 원인에 대한 규명과 ‘원한 서린 고국’에 대한 분노가 담겨져 있다.

페스카마호 사건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처리되야 한다. 나는 페스카마호 선상살인사건 범행자 전재천 씨가 한국구치소에서 써낸 진정서를 읽고 며칠 동안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를 못하였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 내가 어렸을 때 <노예선>이란 영화를 관람한 바 있다. 어둠침침한 선실 안에는 손과 발에 쇠고리가 채워져 있는 많은 노예들이 서로 등을 의지하고 묵묵히 앉아들 있었다. … 이윽고 철창문이 열리자 노란 머리 흰 얼굴 고깔모자를 덮어쓰고 하얀 손장갑을 낀 손에 기다란 가죽채찍을 감아쥔 노예주 몇 명이 문안으로 들어선다. …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은 오늘, 페스카마호 갑판 위에는 옛날의 <노예선>이 재현되고 있다. … 다르다면 시대가 다르고 종족이 다르고 흉기가 다를 따름이다. 또 풍속습관이 같고 언어문자가 같고 같은 민족문화를 소유하고 같은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동방예의지국으로 선망이 높은 백의동포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이고 있다. 노예와 선원의 인권은 어디 있을까?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고 압박이 크면 클수록 반항도 커진다. 전재천도 소와 말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도 사람이란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명의 가치를 모를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택했을까? …

한국 검찰당국에서도 “동정이 갈만한 부분도 있지…”라고 긍정을 표하였다. 이 점이 곧 전재천 씨가 살기 위하여 취해진 결과의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결과가 워낙 엄청나 법정에서 정상 참작여부가 없을 것이다”고 사건의 결과를 예견하는 것은 자체모순이라고 본다. 한국 검찰당국은 “범행의 직접 동기가 1차 가혹한 행위, 하선명령”이라 밝혔다. 그렇다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의 결과는 어디 있는가?

한국 검찰당국이 말하는 ‘가혹한 행위, 하선명령’은 ‘엄청난’결과의 직접적 동기는 될 수 있으나 사건 전체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왜? 선장의 행위가 일으킨 ‘가혹한 행위, 하선명령’의 발생은 이 행위의 근거로서 선장행위의 필연적 결과로 된다. 선장행위의 결과는 다시 전재천 씨등이 ‘엄청난’ 행위를 발생시킨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가혹한 행위, 하선명령’인 제1차적 결과를 ‘양형’의 과정을 거친 다음 ‘엄청난’ 제2차적 결과를 양형하여 최후 종합적인 양형이 있어야만 만민이 납득할 수 있는 즉 공명정대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

오늘날 한국에서는 12․12 군사반란, 5․18내란죄로 사형이 언도된 전두환 씨를 무기형으로, 22년 6월이 언도된 노태우 씨를 17년형으로 그 외에 모두 감형하여 발표하지 않았는가?

나는 끝으로 한국정부당국은 국가․사회․민족․가정 관계 등 제방면을 고려하여 하루속히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 사건이 처리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바이다.


1996. 12.30 김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