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과 ‘인권’에 대한 관심


K군.

인권교육을 받기 위하여 인권운동사랑방을 찾은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요즘 들어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몇개 대학에서는 인권과 관계있는 강좌가 생겼습니다. ‘변혁운동’이 벽에 부딪쳤다는 생각에서인지 대학생들의 담론에 ‘인권’이라는 항목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불황에 시달린다는 출판사들 마저도 인권에 관한 책들을 ‘무난한 사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무지막지한 폭력이 날마다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했던 7․80년대, 우리 국민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차라리 애틋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 ‘문민 이데올로기’의 그늘 아래 ‘인권’에 대한 안면몰수의 시대가 4-5년 가량 계속되다가 요즘 와서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아닌,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이, 따라서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한줌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지만 우리 인권운동가는 당신 같은 똑똑한 학생에게 인권교육을 하도록 만들어준 요즘의 이런 현상을 그런 대로 반가운 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거짓 자유권과 가짜 평등권

그러나 이제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아름다운 말로 시작되는 인권의 세계로 당신의 손을 잡고 안내해야 할 나에게는 하나의 큰 슬픔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인권이란 거짓이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아름다운 말로 가득한 인권 세계의 현실 속에는 가도 가도 권력의 완강한 벽과 도저히 건너 갈 수 없는 ‘빈부의 강’으로 보호 받는 거짓 자유권과 가짜 평등권이 있을 뿐입니다.


K군.

인권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보편성’이라고 흔히 설명됩니다. 그러나 꿈 속에서의 인권이라면 모르되 현실세계에서 지금까지 인권이 ‘보편적’으로 존재해 본 일은 없었습니다. “자유!” “평등!”을 외치면서 근대 시민혁명의 주도권을 잡은 시민계급은 혁명에 성공하자 그 ‘자유’와 ‘평등’을 자기들의 계급이익에 맞게 규범화시켜 그것을 “만인을 위한 시민권”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봐라, 거지도 노동자도 모두 재산을 소유할 권리, 자유롭게 계약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계급적 이익, 정치적인 저의를 ‘보편적 인권’이라는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하는 위선의 역사는 이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 이 위선의 역사는 절정에 달해 있으며 현대사회는 여전히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반박할 길 없는 지당한 주장을 ‘보편적 인권’이라는 초계급적인 환상으로써 무력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세상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자들이 아무리 점잖게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라고 설교해도 그것이 거짓말임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집회․시위․결사․양심․프라이버시․신체․재판․교육․성…. 그 어느 것을 보아도 “누구나 똑같은 권리”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약자는 언제나 강자와 “똑같이” 권리를 보장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것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때로 약자가 ‘똑같이’ 권리를 행사하게 될 뻔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언제나 ‘피의 탄압’으로서 끝났습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며, 인간의 역사는 항상 그렇게 전개되어왔던 것입니다. 내무부 장관 시절의 최형우씨가 무식하게도 “공산주의자에게는 고문을 해도 된다.”고 했을 때, 혹은 북한이 “우리는 자기 당성을 숨기지 않듯이 인권문제에서도 계급성을 숨기지 않는다”고 잘라 말할 때 나는 이 뻔뻔스러운 솔직함에 차라리 더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K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점점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런 관심은 강단에서 또는 서점에서 인권장수에게 약간의 돈을 가져다 줄 만큼 자라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시대가 오면 아마도 당신은,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애인의 재잘거림처럼, 귀에 익은 노랫말처럼 혹은 ‘차 한잔의 에세이’ 처럼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아아, 그 기름때에 찌든 노동자도 나와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구나. 평등이 좋긴 좋다….”


“누구나 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

앞으로 며칠 동안 이곳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인간의 권리에 대해 공부하게 될 K군. 당신이 이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당신에게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당신의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인권’에 대한 치열한 관심을 간직하는 사람은 완강한 현실의 벽에 번번히 부딪쳐 수없이 깨지면서 분노 속에서 ‘인권’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터득할 것입니다. ‘인권’을 통해 이 세계의 진실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말을 가슴이 찢어지게 사랑하면서 슬픔이 없이는 그 말을 입에 올리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권의 역사는 ‘시민권’에 대한 인간해방적 인권개념의 유구한 반역의 역사임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