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좌파, 좌경, 좌익’이 매우 부정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을 알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우파, 우경, 우익과 번갈아 혹은 연립하여 정권을 잡기까지 하는 좌파, 좌경, 좌익이 한국에서는 오직 경계와 감시, 배제와 척결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민주국가에서는 우익, 우파, 우경이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좌익, 좌파, 좌경 역시 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좌’가 곧 죄라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안기부와 검찰은 툭하면 ‘좌경세력 척결’을 다짐한다. 간첩신고안내문에는 ‘좌익’이 신고대상으로 올라있다. 언론이나 정치권도 ‘우리 사회의 좌경세력이 몇만 명이라는 데 무슨 대책이 없느냐’는 식으로 이러한 인식을 부추긴다.
이렇듯 국가기관의 발언과 문건으로 좌익, 좌파, 좌경을 공식 단죄하는 경향은 이른바 공안정국이 오면 보다 기승을 부린다. 한 예로 작년 여름의 한총련 사태 직후 거리에는 “아름다운 민주사회 파괴하는 좌익분자”라는 글귀에 벌레가 갉아먹은 장미꽃을 그려놓은 포스터가 서울지방경찰청 명의로 나붙였다. 메시지는 물론 좌익, 좌경, 좌파는 해충에 불과하니 모름지기 박멸과 척결에 힘쓸 뿐 행여라도 동조하지 말라는 것. 하지만 똑같이 치우친 것인데 어째서 좌로 치우친 좌파, 좌익, 좌경은 안되고 우로 치우친 우파, 우익, 우경은 좋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좌와 우가 공존하지 못하는 현실
이쯤에서 우리 정부가 무분별하게 싸잡아 매도하는 좌파, 좌경, 좌익이 무엇인지 간략히 따져보자. 이념적으로 좌파는 자유, 평등, 연대라는 근대의 대표적 정치이념 중 평등과 연대를 중시한다. 정치적으로 좌파는 보통사람이나 민중의 권익을 옹호하며 이를 위해 특권화한 기득권과 싸운다. 언제나 힘들고 고단할 수밖에 없는 이 싸움을 좌파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견딘다. 현실적으로 좌파는 성별, 인종, 국적, 종교 등 수다한 명목으로 행해지는 어떠한 반인간적 차별에도 반대하며 이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운동에 열심이다. 그 결과 노동운동, 복지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은 모두 좌파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좌파는 이성과 평등, 그리고 실천을 중시하며 진보적이다.
반면 우파는 전통과 자유, 그리고 실용을 중시하며 보수적이다. 그렇다면 좌파와 우파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어느 한편에 경도될 경우 사회는 균형과 조화를 상실하게 된다. 이는 새가 양날개가 있어야 제대로 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공존하며 경쟁하고 보완한다. 특히 우리의 부러움을 사는 선진민주국가들의 제도들은 대부분 좌파의 이론과 실천에 크게 힘입은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사회 진보를 가져온 좌파의 산물
이렇게 볼 때 좌파의 존재는 우파의 존재만큼이나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현상이다. 다만 좌파건 우파건 다양하기 짝이 없는 인간성의 구성요소 중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이고 치우친 것이기 쉽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은 치우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아무튼 좌파를 싸잡아 타도와 척결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국가와 관변의 언론행위는 확립된 용어례에 반한다는 점에서 반이성적이고 좌파를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반인간적이기 그지없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유관 국가기구들은 척결대상으로 삼고 있는 “좌익, 좌파, 좌경”은 실제로 폭력혁명세력을 한정해서 가리키는 용어라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째서 ‘극우, 극좌세력을 경계하자’든가 ‘폭력세력을 척결하자’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좌경세력을 척결하자’고 할까? 공안당국이 무식해서 그럴 리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해야만 선진국형 좌파의 형성과 득세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과 진보를 주창하는 좌파를 무조건 폭력혁명세력으로 매도하는 잘못된 언어관행의 최대 수혜자는 공안세력 기타 기득권세력인 셈이다.
진보적 개혁마저 냉각시키는 좌경세력 척결론
현실의 ‘좌경세력 척결론’은 실제로 폭력혁명세력의 활동을 차단하는 효과를 넘어 진보적 개혁 요구마저 냉각시키는 효과를 낸다. 뿐만 아니다. ‘좌경세력 척결론’은 우리 사회를 극한적인 분열과 대립의 장으로 만든다. 사상과 이념이라는 지극히 부분적 잣대로 모든 사람을 분류한 후 ‘좌’의 판정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으로 대접하기를 거부하고 무조건적인 증오와 적개심을 교사하는 것이 바로 ‘좌경세력 척결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반이성적이고 반인권적인 ‘좌경세력 척결론’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필자는 하나의 방안으로 ‘좌경 척결!’과 같이 무분별한 국가기관들의 언론관행에 대해 일련의 소송을 제기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즉, 좌파, 좌경, 좌익을 폭력세력과 등치하여 매도하는 국가기관의 발언이나 문건에 대해 표현 정정, 배포 중지등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자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관심과 행동을 기대한다.
곽노현(방송대 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