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가 잡혀갔다.
73년부터 십여 년간 한국일보의 간판 시사만화였던 ‘두꺼비’의 작가 안의섭 씨가 86년초 안기부로 연행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55회 생일이던 1월 19일자에 실린 4단만화의 내용 때문이었다.
문제의 4단 만화를 소개하면,
1단-“대통령각하, 오래 오래 사십쇼!”(목소리만 들림)…(두꺼비가 고개를 돌린다)
2단-“하는 짓이 마음에 쏙 듭니다”(역시 목소리만)…(두꺼비 놀라는 모습)
3단-“건강하셔야 합니다”(계속 목소리만)…(두꺼비 매우 놀라는 모습)
4단-“레이건”(기도하는 두꺼비의 아내)
김 대통령이 수시로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97년의 시각에서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안기부는 이 만화를 ‘국가원수모독’으로 규정해 안 화백을 연행했고, 안 화백은 87년 6.29선언 이후까지 1년 7개월간 절필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안기부 언론통제 여전
87년 6월 항쟁 이후 괄목할 만한 변화로 ‘언론 자유의 확대’를 꼽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김영삼 정부도 93년 안기부 내 제4국(정치언론 담당부서)을 폐지했다. 이는 언론에 대한 정보기관의 통제를 중단하겠다는 적극적 제스츄어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안기부 역시 언론에 대한 감시·감독의 손길을 거두지 않았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는 95년 ‘안기부 언론팀’의 존재가 한 언론을 통해 폭로되면서였다.
당시 <미디어 오늘>의 취재팀은 “안기부가 서울지부 정보과 산하에 40여 명 규모의 언론팀을 별도기구로 운영하면서 언론인과 언론사에 대한 정보수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95년 5월 17일자). 취재팀은 주요언론사 전담기관원의 명단까지 공개하면서, “이들 요원들이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언론사에 출입하는 것은 아니나, 주로 언론사 밖에서 언론인들을 만나 정보수집 및 ‘보도조정’ 활동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자신은 ‘보도의 성역’으로
실제로 언론에 대한 안기부의 압력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95년 SBS가 특집으로 제작한 <해빙>은 미국교포출신 기자와 북한 여성외교관의 사랑을 통해 통일의 문제를 다루려던 드라마였다. 당초 이 드라마 대본에는 89년 임수경 씨의 평양축전 참가 모습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었으나, 안기부원들이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질 우려가 있는 내용은 수정하거나 빼달라”고 수차례 요구한 끝에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사태로 한총련에 대한 비판이 들끓던 96년 10월 <추적 60분>은 ‘긴급입수-한총련 북에 간 대학생들’이란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이 말썽을 일으켰던 것은 ‘안기부의 제작지시’에 따른 방송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기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안기부가 제공한 필름을 가지고 긴급 제작․방영된 것이었다. 당시 노조와 제작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프로그램이 제작․방영된 것은 ‘안기부 외압’에 대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한편, 96년 5월 KBS의 <추적 60분>팀은 성혜림 씨 망명사건과 관련해 3개월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안기부 대북정보력의 허점’ 등을 심층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기부의 대국민 이미지를 위해 이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달라”는 안기부의 ‘요청’에 따라 안기부 관련 부분은 삭제된 채 방영됐다. 문민시대의 안기부는 ‘사전검열’ ‘보도통제’ ‘제작지시’ 등의 형태로 언론을 주물러 오는 한편, 안기부 자신만은 ‘보도’의 성역으로 남겨 두려한 것이다.
평양전경, 안기부 ‘통제’로 방영 안돼
무엇보다도 안기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대표적 영역은 북한관련 부분이다.
현실적으로 국내의 북한 관련 정보는 안기부가 독점하고 있다. 때문에 안기부가 제공하는 자료만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공개될 수 있고, 이렇게 여과․선택된 정보만이 국민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설령 언론사가 독자적으로 자료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공개할 수 있는 형편 또한 아니다.
평양시내에 있는 높이 1백70여 미터의 주체사상탑에 오르면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우리 나라엔 주체사상탑에서 바라본 평양시내 전경 화면이 없는 걸까? 95년 6월 한 북한담당기자는 <미디어 오늘>에 보낸 기고문에서 “주체사상탑에서 찍은 시가지 화면이 방송사에 있다. 그러나 평양시가지 화면은 늘 우중충한 옷을 입은 북한사람 몇 명이 지나가는 모습으로 방영된다”고 밝혔다. 주체탑에서 바라본 전경 화면에 대해 안기부에서 방영을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기부 ‘특수자료지침’에 따르면, 모든 북한관련 자료의 보도에 있어 안기부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거금’을 들여 필름을 구한다 해도 안기부의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방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북한’ 보도에 있어 언론은 ‘독점 공급자’의 ‘요청’과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다.
노골적 언론탄압, 언제든 부활 가능
68년 언론인을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시킨 ‘신동아 필화사건’, 66년 동아일보 권오기 차장 폭행 사건을 비롯한 숱한 언론인 테러사건 등 과거 군사정권에서는 노골적인 언론탄압이 자행되어왔다. 문민정부 들어 그렇게 노골적인 언론탄압의 모습은 자취를 감춰왔지만, 아직도 정보기관의 감시․통제 욕구는 집요하다. 지난해 ‘청와대 밀가루 북송 사건 보도’와 관련해, 취재기자를 구속하고 기사를 삭제한 <시사저널>파문은 정보기관을 앞세운 폭력적 언론통제가 언제든 부활할 수 있음을 경고해 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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