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제시 요구는 묵살, ‘간첩’ 진술만 앞세워 자백강요
최근 이른바 ‘부여간첩’ 관련 구속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으나, 안기부나 경찰이 이른바 ‘부여간첩’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증거 제시 없이 자백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17일 서울지법 320호실에서 열린 박충렬(36, 전국연합 사무차장), 김태년(31, 성남 「미래청년회」 준비위원장)씨의 구속적부심 심리에서 이점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났다.
수사과정에서 회합통신 질문조차 안받아
안기부는 구속영장에서 박씨가 ‘90년 일자불상경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박씨의 형 집에서 북한에서 남파된 성명불상의 공작원으로부터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격려의 말과 함께 조국통일을 위해 함께 일하자는 권유를 받고 포섭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A3(무전기) 지령 수신방법 등의 교육을 받고 지령에 따라 90년 이후 95년 현재까지 약속한 통신조직을 통해 북한 공작조직에 보고하였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씨는 “나는 안기부에서 수사를 받으면서 단 한번도 이에 대해 수사를 받은 바도 없으며 단지 ‘너 누군가를 만나고 있지 않느냐? 솔직히 밝혀라’라는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또한, “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 무슨 증거나 자료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해라’라고 하며 무슨 내용으로 나를 수사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으나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기부 수사관들은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네가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그 증거를 제시하겠다’는 식의 생사람 잡는 식의 수사를 했다고 박씨는 전했다.
안기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박씨를 접견하러 온 변호사들에게 △북한 방송에서 박충렬이 사업을 잘 하고 있다는 등의 방송이 나온 사실 △지난 10월24일 사살된 ’부여간첩‘ 박광남의 몸에서 박씨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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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기부는 박씨가 보고하는데 사용했다는 무전기도, 죽은 ‘간첩’ 박광남 씨의 선물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태년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90년 일자불상경부터 95년 10월까지 북한 대남공작기관인 조선노동당 사회문화부 소속 성명불상의 남파간첩으로부터 접촉제의 연락을 받은 후 수시로 만나 대남공작 방안 등을 협의하는 등 회합하고 성명불상의 남파간첩으로부터 현지 통신교육을 받고 구식 HF 고속 메모리 건전 무전기를 수령하여 활동사항을 대북 보고하였다는 것”이 김씨의 회합통신 혐의다.
이에 대해 김씨도 “수사를 받으면서 단 한번도 회합 통신에 대해 어떤 증거물을 제시한 적도 없고 단 한마디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며 “무조건 자백을 하라는 식의 수사를 하여 나 자신도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무슨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만약 내가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증거가 있다면 좀 보여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고문에 의한 강요 우려
임종인 변호사 등은 “구치장소로 영장에 기재되어 있는 서초 경찰서에서는 단 5분 밖에 있지 않은 채 안기부로 연행한 후 지금까지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은 채 계속해 무조건 자백을 하라는 식의 구속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안기부를 통박했다.
또한, “현재 이들의 공소사실을 보면 국가보안법 제7조(이적표현물 관련), 10조(불고지죄)등은 안기부에서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영장에 이례적으로 안기부와 경찰청을 동시에 기재함으로서 이러한 국가보안법 내용에 대해 안기부에서 수사를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들에게 아무런 증거도 아무런 자료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인신을 구속한 채 생사람 잡기식의 수사를 하고 있는 안기부에 대해 그 잘못된 관행에 철퇴를 내려 주기 바란다”며 “만약 적부심 재판이 기각된다면 이들은 최장 20일동안 안기부에 갇힌 채 어떤 고문을 당하는 속에서 거짓자백을 강요당할지 모른다”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들에 대한 구속계속 여부는 오늘 오전중으로 결정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