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를 ‘마녀 사냥’의 회오리가 강타하고 있다.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해체 시키겠다”는 어마어마한 계획 아래 좌익사범 합동수사본부가 ‘투항 기한’으로 정한 7월 31일까지 206개 한총련 가입대학 중 132개 대학 총학생회와 1,658명의 한총련 중앙대의원 중 1,124명이 한총련을 탈퇴했다고 한다. 남총련 의장과 조국통일위원장이 한총련 탈퇴서를 냈다고 신문은 보도한다. 이제 공안기관의 ‘한총련 깨기’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초보적인 교과서 마저도 깡그리 부정함으로써 학생운동은 물론 우리의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총련을 탈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물론 대학생들 개개인의 결단의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생 개개인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이유로 한총련을 마음대로 탈퇴할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고 농담 따먹기를 하는 우리의 일상 생활조차도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의 구조와 따로 떨어진 완전한 개인사일 수가 없다. 하물며 ‘한총련 탈퇴’의 결단이 자기 개인의 문제로 끝날 단순한 문제가 아님은 너무도 분명하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탈퇴행위가 부도덕한 정치권력의 자기 합리화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독재정권이 민주주의를 말살하기 위하여 늘 취하는 중요한 행위 중 하나가 자기에게 가장 적대적인 세력을 고립시키고 말살하기 위하여 그 ‘적’을 집중적으로 음산하고 위험한 이미지로 재정의(再定義)하는 행위다. ‘한총련’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바야흐로 ‘폭도’, ‘살인’, ‘패륜’ 등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혐오어(嫌惡語)로서 ‘재정의’ 되고 있다. 언어는 결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정치적 도구이다. 이런 유의 혐오어는 언제나 지배세력의 부도덕성이나 비인도성을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지고 쓰여지게 마련이다.
이런 사실을 대학생들이 자각하고 있다면 그들은 지배세력에 의하여 ‘재정의’된 언어를 다시 원래 뜻으로 ‘재재정의’(再再定義) 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탈퇴행위는 이 ‘재재정의’를 위한 노력의 포기를 의미한다. 객관적으로 그것은 지배권력이 만들어낸 한총련의 음산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결과가 되고 지배권력의 자기 정당화를 용인해주는 결과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지적 배신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탈퇴행위는 대학생들의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결성된 한총련 전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이것을 “해체하겠다”는 공안세력의 무모한 계획에 도움을 주고 있다.
검찰은 한총련 중앙대의원 1,124명이 탈퇴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미 구속된 48명을 제외한 486명은 사법처리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니까 1,124명의 탈퇴는 탈퇴를 거부하는 486명을 더욱 더 고립과 박해 속으로 몰아넣는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탈퇴자를 사법처리 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안 검찰이 탈퇴자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싶어서가 아니라 1,658명이라는 수를 깡그리 감옥살이 시키기가 두렵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공안기관의 전근대적인 발상은, 대학생들이 대거 탈퇴를 함으로써 공안기관의 ‘선별작업’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탈퇴행위는 또한 무엇보다도 폭력의 용인이요 폭력에 대한 굴복을 의미한다.
탈퇴 대학생들은 흔히 한총련 지도부의 ‘비대중적 폭력노선’에 대한 환멸을 한총련 탈퇴 이유로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분명 자기기만이다. 한총련 지도부가 심각하게 비판 받아야 한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얼마든지 탈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지금인가? 도덕성의 실추로 인하여 궁지에 몰린 정권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한총련을 속죄양 삼고 공세를 가하는 지금인가? 공안세력과 언론들이 몽땅 들고 일어나 탈퇴하지 않으면 모두 구속하겠다고 살벌하게 설치는 바로 지금인가? 탈퇴가 폭력에 대한 굴복이라는 사실을 탈퇴한 본인들은 누구 보다도 잘 아고 있을 터이다.
대량 탈퇴에 만족하는 공안세력은 폭력을 ‘역시 써볼 만한 수단’으로서 재인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량 탈퇴는 국가권력의 폭력 앞에 인간이란 어차피 무력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패배주의와 냉소를 대학생 사회에 만연시킬 것이다. 나아가 몸을 내던진 정의의 주장을 희화(戱畵)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정의와 진보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평생에 한번 쯤은 절망적인 상황 속으로 내던져질 때가 있을 것이다. 고립무원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희망과 믿음을 저버리기 위한 핑계를 찾게 마련이다. 정의와 진보에 대한 희망 믿음을 저버리는 데 프래그머티즘 만큼 편한 도피처는 없다. “한총련? 이름을 바꿔버리면 되지 않은가!” “감옥에 가느니 뭣이든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리고 더 겸허해야 한다. 감히 말하건대 지금 대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한총련 탈퇴를 거부하고 한총련을 ‘재재정의’해내는 일 만큼 엄청난 의미를 지닌 투쟁은 없다. 권력의 폭력을 꿋꿋이 견디며 기꺼이 감옥에 감으로써 정신의 젊음을 지켜내는 일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