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의 인권회복에 획기적 신기원을 이룩할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채택한 영장실질심사제도가, 운용 개시 첫 돌도 못되어 시련을 맞고 있다.
검사출신 국회의원 소수가 중심이 되어 원칙적 실질심사를 예외적 실질심사로 후퇴시키는 형소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개정의 주된 내용은 현행 ‘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에는 피의자를 심문할 수 있다’는 규정을 ‘피의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심문할 수 있다’로 하자는 것이다.
이번의 개정시도가 다분히 기습적이고 밀행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논평의 대상으로 삼기조차 꺼려진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관철되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합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검찰의 논거에 대해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검찰은 개정안이 법원칙에 더욱 부합할 뿐만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더욱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피의자의 판사면접권은 피의자의 권리이므로 피의자 심문여부는 피의자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법원칙에 더 맞고, 또 현행제도는 판사면접에 대한 피의자의 결정권이 무시되어 있는 반면, 개정안은 피의자의 의사를 따르자는 것이므로 피의자의 인권보장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면 검찰의 이러한 강변이 갖는 허구성은 드러나고 만다.
‘임의적 실질심사’가 ‘형식심사’로
개정안이 과연 피의자의 인권보호에 더욱 철저한가. 개정안에 의하면 피의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법관의 판단에 따라 피의자의 심문여부가 결정되므로 현행제도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피의자의 요청이 없을 때에는 현행의 임의적 실질심사가 형식심사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이 어떻게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더욱 철저히 한다는 말인가. 형식심사에서 실질심사로, 다시 실질심사는 임의적 실질심사에서 필요적 실질심사로 이행하는 것이 피의자의 인권신장의 정도라는 원론을 부정하려는 것인가.
만약 현행의 규정에다가 ‘피의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심문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보완하자는 것이라면, 부분적으로 필요적 실질심사를 도입하려는 것이므로, 분면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더욱 철저히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렇게 되어 있지 않다. 피의자의 결정에 따르게 하자는 등의 표현을 통하여 마치 피의자를 위한 개정인 것처럼 현혹하려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권리는 권리자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법원칙에 더욱 부합하다는 논거도 피상적인 접근이 빠지기 쉬운 ‘원리의 왜곡’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권리라는 이름이 같다고 해서 그 본질까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권리자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그 본질상 더 타당한 권리도 있다. 그러나 피의자의 법관면접권은 그렇지 않다. 피의자 심문의 본질은 부당한 인신구속의 방지에 있고, 그것은 국가의 의무로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인신구속의 집행은 검찰에, 그 필요성의 판단은 법원에 귀속시키는 것은 이러한 의무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따라서 피의자심문은 본질상 피의자의 처분에 맡길 성질이 아니라, 국가가 의무적으로 실현시켜야할 목표이다. 본질이 이러하다면, 피의자외에 가족․변호인도 실질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수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검찰은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비유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굳이 권리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피의자는 구속영장에 의하지 않고는 구속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검찰의 논리대로 하면 피의자의 요청이 있을 때에만 영장주의에 의하자는 개정안도 나올 법하다. 웃지못한 원리의 왜곡을 본다. 법의 기교는 그것이 원리에 도전하는 형상이어서는 안된다. 오로지 구체성과 특수성을 위해서 원리에 탄력성을 부여한다는 자기 한계를 지킬 때, 그것은 비로소 지혜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장심사제도에 대한 검찰의 일관된 입장의 집요함을 보면, 검찰과 경찰의 차별성에 회의를 갖게된다. 처벌지향적인 경찰에 대해서 검찰은 법의 적정한 실현을 지향하는 법의 감시자라는 점에서 그 차별성을 찾을 수 있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지휘와 감독권, 영장청구권 및 소추권의 독점, 이 모든 것은 이러한 차별성에서 정당화되었던 게 아닌가. 본연의 자기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다.
문채규(안동대 교수․형법)
- 1008호
- 문채규
- 1997-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