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도적 범죄 처벌·개인 제소 가능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와 인권보장을 위한 국제사회의 주요과제 가운데 하나였던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마침내 창설을 눈앞에 두게 됐다.
지난 3월 16일부터 4월 3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준비위원회」 6차회의는 '전문'과 약 1백개조의 조문으로 구성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협약 초안'을 완성했으며, 이 초안을 토대로 오는 6월 열리는 로마 외교회의에서 협약을 타결시킬 예정이다. 이번에 완성된 '초안'을 둘러싸고도 아직 각 국의 이견이 대립되고 있으나, 모든 사안이 표결에 의해 처리되기 때문에 협약체결은 가능할 전망이다.
'과거사' 소급재판은 안할 듯
앞으로 창설되는 국제형사재판소는 국가간의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달리, 개인을 당사자로 하는 최초의 상설 국제사법기관이 되며, 전쟁범죄와 집단학살 및 각종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대한 재판을 맡게 된다. 뉴욕 6차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온 이창재 검사는 "국제형사재판소는 그동안 임시기구 형태로 운영되던 국제재판소를 상설기구화 한다는 점과 유엔안보리 결의 등 강대국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각 국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민주적으로 창설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형사재판소가 설립될 경우, 각 개인 뿐 아니라 민간기구의 고발도 많은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개인제소 문제와 관련, △국가 또는 유엔안보리에 제소권을 주자는 견해와 △검찰 직권으로 고소를 가능하게 하자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으나, 다수 국가가 '검찰 직권 고소'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또 범죄행위에 대한 실질적 처벌을 위해, 내국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형식적 재판에 그치는 경우 보충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다수 국가를 협약에 참여시키기 위해 소급적용은 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과거사에 대한 재판은 볼 수 없을 전망이다.
한국정부 적극 대처활동
이처럼 국제형사재판소 창설이 가시화된 것은 미국·영국·유럽 등 대다수 국가의 지지와 휴먼라이츠워치 등 전 세계 2백여 개 민간단체들의 압력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우리 정부도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유종하 당시 외무장관이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대한 지지연설을 한 이후, 국제형사재판소 설립대책반을 구성하는 등 이 문제에 적극 대처 해왔다. 채정석 대책반장(법무부 검찰4과장)은 "우리나라와 싱가폴, 스위스 등 약 45개국이 국제형사재판소 창설을 위한 적극적 지원활동을 전개했으며, 정부는 가급적 우리 법제와 충돌이 적은 협약안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채 검사는 또 "우리와 같은 약소국일수록 국제법을 강화하는 국제협력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국민들의 인식제고와 민간기구의 적극 참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고·르완다 사태에서 논의 촉발
2차대전 이후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처벌의 예는 뉘른베르크 및 동경 전범재판이 있었으나 상설 형사재판소의 설치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 구 유고연방과 르완다에서 참상을 겪고, 이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임시 재판소를 설립 운용하면서 상설 국제형사재판소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92년 유엔총회에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대한 준비가 본격화됐으며, 94년 협약 초안을 제출하고, 95년부터 6차례에 걸쳐 「설립 준비위원회」를 운영해 온 끝에 그 결실을 보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