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동 강제철거 완료, 농성자 전원 연행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폭포수 아래를 지난듯 흠뻑 젖은 몸에다, 부상당한 팔을 감싸 안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처절했다. 일부는 오열을 터뜨렸고, 일부는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묵묵히 경찰에게 몸을 맡겼다. 두달여 간에 걸쳐 골리앗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도원동 철거민들의 싸움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장비동원, 총력 공격
23일 오전. 용산구 도원동 재개발현장에선 경찰 수백여명과 용역직원, 재개발조합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골리앗(철탑망루)에 대한 최후공격이 시작됐다. 두 대의 크레인은 골리앗을 향해 잠시도 쉬지 않고 물대포를 쏘아댔고, 마이크에서는 "안전한 귀가를 보장하겠다"며 철거민들의 '투항'을 종용하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전투경찰들은 철거민들의 추락을 예상한 듯, 골리앗 아래로 여러개의 매트리스를 깔아 놓기도 했다.
골리앗 농성자들은 물대포의 공격 때문에 몸 하나 제대로 추스리기 어려운 속에서 혼신의 저항을 했으며, 산발적으로 용역직원들과 투석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싸움의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재개발조합과 건설·용역회사측은 이날로 '끝장'을 볼 각오가 되어 있었으며, 공권력의 승인 아래 이뤄지는 철거작업에서 철거민들의 저항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처절한 저항 끝에 '백기'
낮 12시. 30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중기가 콘테이너 박스를 철탑망루 위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이른바 '특공대'로 불리는 용역직원 10여 명이 쇠파이프와 연장을 소지한 채 '탑승'하고 있었다. 골리앗 농성자들은 쇠파이프를 휘둘러가며 콘테이너 박스의 착륙을 저지하려 했지만, 10여분 후 골리앗 정상은 '특공대'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다.
진입에 성공한 '특공대'들은 골리앗 정상으로부터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농성자들이 쌓아두었던 돌과 화염병, 이불과 옷가지 등이 하나둘씩 지상으로 던져졌다. "살려달라"는 농성자들의 마이크 소리도 앰프선이 잘려나가면서 곧 잠잠해졌다. 이제 골리앗 진압은 시간 문제였으며, 구경중인 재개발조합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제 항복할 때도 됐는데"라는 이야기들이 웃음 속에 흘러나왔다. 밖에서는 물대포를 쏘는 크레인 외에 또 한 대의 포크레인이 철탑 외벽을 허물기 시작했고, 이때 잠시 골리앗의 철거민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물대포의 위력 앞에 화염병 역시 무용지물이었으며, 오후 1시 15분경 농성자들은 결국 '백기'를 내걸었다.
다섯 시간여의 '전투' 끝에 농성자들은 하나둘씩 골리앗 밖으로 걸어나왔다. 한 농성자는 "옥상으로 진입한 용역직원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오후 2시경 연행자들을 태운 전경버스가 공사현장을 빠져나가려 할 때, 한 주민이 차 앞을 가로막고 오열하기도 했지만, 그 주민 역시 전경버스에 실린 채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것으로 도원동의 상황은 종료였다.
한편, 도원동의 철거가 임박해진 오전 11시경, 양연수 전국빈민연합(준) 의장, 오세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진전을 위한 연대」대표, 민주와진보를 위한 지식인연대의 김영규 교수, 노수희 전국연합 공동의장, 남경남 전철연 의장등 각계인사 10여 명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강제철거의 중단과 주거권보장을 요구했지만, 이미 때늦은 요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