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0일,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학살을 목격했다. 철거민들이 옥탑 철탑 옥쇄농성에 돌입한지 겨우 25시간만이었다. 대화로 설득하려는 노력도 포기한 채 새벽 6시, 적을 상대하는 전쟁처럼 군사작전을 펼쳤다. 테러와 같은 중대한 범죄에 투입되어야 할 경찰특공대가 겨우 30여 명 남짓의 철거민들을 진압하는데 투입되었다. 그 작전을 승인한 이는 촛불에 대한 강경진압을 주도했던 현 서울경찰청장이고,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서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이다.
속전속결로 철거민들을 해산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을까. 분명히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을 인지하였던 경찰이었는데, 경찰 지휘 책임자들은 자신들의 부하들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사지로 내몰았다. 아무런 안전장비도 없는 채. 그렇게 그들은 죽어갔다. 한쪽은 생존권을 위해 마지막 올랐던 망루에서, 한쪽은 생존의 비명소리를 진압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다가….
인간의 죽음 앞에서도 몰염치한 저들
사람이 한 번에 6명이나 죽은 참사가 빚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내노라하는 이들이나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은 합법적인 조치임을 강조하고,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은 이번 기회에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공식 브리핑으로 냈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신지호 의원은 전철연은 반국가단체라면서 이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을 옹호하고 나섰다.
뿐만인가? 신원 확인도 없이, 유가족들에게 통보도 없이, 검찰은 일방적으로 불에 타버린 시신을 부검했다. 유족들이 시신을 확인하자고 요구해도 경찰은 가로막았다. 그 참혹한 앞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 2009년 새해는 이렇게 잔인한 폭력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잔인하게 일깨워주면서 시작하고 있다. 올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폭력 앞에 떨고, 울어야 할까. 참으로 걱정스럽다.
미국에서는 '버럭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했다. 그는 미국이 겪고 있는 위기를 직시하자면서 솔직하게 위기상황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번 위기가) 시장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을 경우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 수 있으며, 오로지 부유한 자들만을 위하면 국가는 장기간 번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삼 일깨워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가려는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오바마는 뚜벅뚜벅 걸어갈 것임을 선언했다.
지난 연말과 연초 '입법전쟁'을 치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다시 2라운드를 준비한다. 연말연초와 같은, 법안을 무더기로 날치기 처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오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민주당이 지난번처럼 강경하게 반민주, 반인권 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강경투쟁에 나설 것인지, 언론노조와 같은 힘이 동원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 KBS 이병순 사장은 자신의 취임을 반대했던 사원행동 간부들을 중징계하여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KBS노조마저 투쟁에 나서게끔 몰아세우고 있다. YTN도 마찬가지다. 낙하산 사장들이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다. 정부의 나팔수로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이들 때문에 언론노조의 동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영희 장관도 노동계를 불붙게 하고 있다. 말로만 하던 비정규직 기간연장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계는 당연히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새로운 독재가 온다
저들이 연말연초에 처리하려다 2월로 미룬 법안들은 엄청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법안들, 헌법의 규정을 무시하는 입법 쿠데타에 해당하는 내용들로 가득찬 법안들 뿐이다. 인권의 관점에서는 인권의 후퇴 금지 원칙을 어기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법안들과 기본권을 아예 부정하는 각종 법안들로 가득찼다. 입법을 통한 새로운 계급독재를 위해서 재벌과 소수들만 살 수 있도록,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은 법이라는 이름으로(그들은 얼마나 법치를 좋아하는가) 초기에 진압해버리겠다는 살벌한 법안들이다. 이런 독재는 이전에는 없었다. 군부를 대신해서 국정원이 정보정치를 맘대로 할 수 있게 되고, 사소한 표현으로 구속될 수도 있고, 집회와 시위도 구속을 각오해야 하고, 빈곤층은 더욱 빈곤해질 수밖에 없으면서 그저 입닥치고 견디라는 폭력의 체제를 만들어내려 한다. 만약 이번 용산 참사 투쟁이 시들해지면 정부와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그 여세를 몰아 입법전쟁에서 승리하려고 날뛸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싸워야 하지만, 이미 법안들이 국회의 절차를 통과한 뒤에는 참으로 어렵게 된다. 그래서다. 이번 용산 참사를 계기로 범국민적 저항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이유다. 설 연휴를 지나서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가 살아 곳곳에서 이명박 정권에 저항하는 투쟁의 수위를 높여갈 수는 없을까.
곳곳에서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강행정책, 소수 세력의 독재를 위한 정책은 저항에 직면해 있다. 학교 공교육을 포기하는 일에 맞서는 교사들이 있고, 사실상 대운하를 추진하는 4대강 정비사업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과 종교운동이 있고, 비정규직법 개악과 최저임금법 개악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등록금 동결과 인하투쟁을 하는 대학생들이 있고, 대학생들보다 의식이 높은 초중고생들이 있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면서도 인터넷을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가는 네티즌들이 있고, 전국의 지역마다에서 아직도 촛불을 드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실업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이런 많은 이들의 저항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이들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정책들에 반대하면서 모일 수 있다면, 저항의 연대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지난해에 타올랐던 촛불보다 더 위협적인 힘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합법, 비합법 폭력이 극성을 부릴 수도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극우, 보수세력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정국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지난 연말연초의 입법전쟁의 실패, 정부의 개각에 따른 한나라당의 반발, 당내 야당세력인 친박연대의 엇박자 등으로 인해서 추진력을 갖고 정책을 밀고 가지는 못한다. 입법전쟁에서 강력한 투쟁으로 야당의 본모습을 회복한 민주당과 민노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런 때 이재오가 귀국한다는 말도 들린다.
역시 이후 가장 문제는 경제다.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될지, 최근 북한이 공세적으로 나오면서 서해상에서 국지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현실화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지배세력들은 다시 한번 반북 소동과 애국 소동을 벌일 것이다. 이래저래 위기에 내몰리는 국민들의 공포감을 더욱 조장하면서 애국 소동으로 동원해낼 공산이 크다.
미국경제나 중국경제의 침체가 미치는 영향이 어떨지 모른다. 쌍용자동차가 법정관리로 들어가는 상황이 다른 자동차사에서도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소리 소문 없이 도산하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과는 달리 대기업은 매우 심대한 피해를 국민경제에 미치게 되므로 우선적으로 기업부터 살리자는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럴 때 기업에만 구제금융을 쏟아붓고 결과적으로는 재벌만 도와주는 구제금융이 재현될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경제위기를 탈출할 우리의 계획은 무엇일까. 아직 누구도 이에 대한 해답을 내지 못한다. 위기의 기업들을 사회화하는 방향은 맞을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장 살기 힘든 민중들은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는 일자리 때문에 깨진 독에 물 붓기의 구제금융을 찬성할 것인데, 그런 민중들에게 줄 대안은 무엇일까?
한편 정부나 지배세력들이 쓸 수 있는 방법은 합법, 비합법의 폭력이다. 공권력에 의지한 폭력은 당연히 동원할 것이다. 민중들의 저항이 반란으로 전화되지 못하도록, 민중들의 연대가 지배세력에 균열을 내지 못하도록 초기부터 잔인하게 폭력을 동원해 진압하려는 것은 아닐까. 용산 철거민들의 투쟁을 조기에 속전속결했던 시나리오의 밑바탕에는 이와 같은 일벌백계를 통한 응징의 효과, 위축의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용산 참사로 주춤하겠지만, 공권력을 동원한 합법적인 폭력은 언제나 가능하다.
거기에 더해서 뉴라이트 세력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도 가속화된다. 역사 교과서 논쟁에서 일정 정도 성취감을 맛보았고, 전교조 죽이기에도 일정 재미를 본 뉴라이트 세력들은 전선을 확대하려고 한다. 조갑제가 찍은 5대 적은 MBC, 전교조, 민노당, 초법적인 위원회, 한국진보연대였다. 그는 이른바 애국세력의 대오 형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것은 해방전후 시기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단적인 반공주의 단체를 앞세운 백색테러로 발전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진보세력이 대중들의 호응을 얻는 일을 차단하려고 할 것이고, 그들은 전통적인 공포의 효과를 조장하는 방향을 이미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봄을 준비하는 사람들
봄은 아주 가까이 와 있다.
봄이 오면 4대강 정비사업이 본격화된다. 경제위기도 본격화된다. 구조조정과 실업문제도 본격화된다. 북한과의 긴장도 높아진다. 소수를 위한 정부, 소수를 위한 독재는 강화된다.
우리는 이런 봄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이 임단투에 나서고, 대학생들이 등록금 투쟁에 나서고, 4월혁명이 있었고, 메이데이가 있으며, 5월 2일에는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밝힌지 1주년이 된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용산참사 규탄 투쟁을 높여가면서 이명박 정권 출범 1주년인 2월 25일을 위력있게 만들어내야 한다.
아무래도 올해 봄에는 모든 진보운동이 인권운동이 될 것 같다. 권리를 잃은 시대, 폭력이 극단적으로 난무하는 시대,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받는 시대에는 권리를 찾는 모든 운동이 인권운동이 된다. 그야말로 인권은 저항의 언어가 되고, 저항의 논리가 된다. 광범위한 인권운동은 민주주의의 운동의 다른 이름이고, 이 민주주의 운동은 이제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넘어 그 안에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까지 끌어 안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민주주의까지 발전하는 그런 민주주의운동으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 이런 봄을 그린다면 이 겨울이 춥지만 않다. 그런 봄을 이 겨울에 준비해보자. 봄은 준비하는 자의 가슴에서부터 오지 않겠나.
덧붙임
* 박래군은 <인권오름> 편집인이고,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