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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현장을 뛰는 사람들 ⑬ 문만식(전북 평화와인권연대, <평화와 인권> 편집인)

지역인권운동의 싹을 틔운다

얼마전부터 우리는 <인권하루소식>과는 또다른 인권전문지를 매주 한차례씩 접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지령 95호까지 발행된 이 신문은 「전북 평화와인권연대」(공동대표 김승환, 문규현)가 발행하는 주간 인권신문 <평화와 인권>이다.

전주교도소의 재소자 인권침해 문제에서부터 '전주시 치매병원 설립 무산' 사건, 군산 미군기지 사용료 인상문제 등 전북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사안들은 어김없이 <평화와 인권>의 감시망에 걸리고, 이는 곧 전국으로 전달된다. 아직 독자층이 넓지는 않지만, 이 지역 내에선 독보적인 인권파수꾼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평화와 인권>이 인권의 파수꾼으로 자리잡기까지 문만식(29·4대 편집인) 씨의 고민과 노력은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부정기물이던 이 신문을 주간지로 정착시키면서, 초기의 '지역운동 소식지'를 지금의 인권전문지로 발돋움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준비된 운동권'

전북대 88학번인 그가 운동에 투신한 과정은 어찌보면 '평범'하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이 들려준 '5월 광주'의 이야기를 통해 여느 80년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겪었던 그는 교내 문예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회의식을 접하고, 고3 신분으로 참가한 87년 6월항쟁의 경험 등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운동권 선배를 '헌팅'하고 다녔다"는 그의 말은 그가 일찌감치 '준비된 운동권'이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대학교 2학년때 교문앞 시위과정에서 구속돼 98일간의 감방체험을 갖기도 했던 그는 대학 3학년 때 '조직문제'로 인해 일시적으로 운동권을 떠나게 된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잠시 '돈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광주에서는 새벽시장 일을 6개월간 했고, 이후 천안으로 진출해 1년간 '노가다 합숙생활'도 했다. 그러나, 운동에 대한 '미련'과 '일념'은 그를 다시 전주로 불러들였고, 97년 3월 '운동을 하고 싶어' 선배를 찾아간 길이 결국 「평화와인권연대」에서의 활동으로 이어지게 됐다.


자생적 인권활동가로

「평화와인권연대」에서 그에게 주어진 일은 곧바로 <평화와 인권>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권'에 대해 생소하기만 했던 그는 이 일을 통해 본격적으로 '인권'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인권의 역사』『유네스코 인권교육자료집』『인권의 정치』등 '인권'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인권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그의 인권운동의 출발이었다.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한 자료들을 분류하면서 '인권'에 대해 조금씩 눈뜨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른바 '자생적 인권활동가'인 셈이다.


지역인권운동의 난관들

하지만, 지역내에서 인권운동의 싹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무엇보다도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난관이다. 서울만 해도 변호사, 학자, 활동가 등 인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전북지역에선 좀처럼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작은 인권사건 하나가 발생했을 때, 법률적인 지원 하나가 아
쉽다"고 말한다.

또 지역운동의 특성상 인권운동을 전문적으로 해나가기 어려운 점도 그에겐 고민이다. 다양하게 발생하는 지역내 문제들을 외면하지 못하다보니 이일 저일 가릴것없이 참여하게 되고, 그것이 전문적인 인권단체로 성장하는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더불어「평화와인권연대」에서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인권에 대한 이해수준이 다르고, 활동가들 사이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그대로 수용하다보니 '인권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발생하는 점도 극복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화와 인권연대」에서 시작한 인권운동을 통해 많은 성장을 했다"고 말한다. 가장 큰 변화는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눈이 달라진 것"이라는 데, "과거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외국인노동자 문제도 이제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한 가지 예"라고 말한다. 또 최근 들어 지역언론과 대학생들이 인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평화와 인권>이 가져온 고무적 변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발적 청빈'을 원칙 삼아

「평화와인권연대」 식구들도 여타의 사회단체 활동가들처럼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문만식 씨에게 지급될 한달 활동비는 약 40만원선이지만, 실제로 받는 액수는 대개 20만원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다지 불만은 없는 모습이다. 「평화와인권연대」활동가 모두가 '자발적 청빈'을 소중한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란다.


진보적 인권운동을 꿈꾸며

요즘들어 그는 '노동자정치운동'과 '진보적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다. 대학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그에게 '노동자정치운동'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도 한가지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인권운동이 '노동자운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는 생각이 깊기 때문이다.

어려운 지역환경 속에서 인권운동의 싹을 피우려는 문만식 씨의 분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