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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개구멍으로는 안 나간다

“준법서약, 양심자유 침해” 확인


“사람이 다니는 대문을 놔두고 개구멍으로 기어나갈 수는 없다.” 최근 사상전향제 대신 실시되고 있는 준법서약제에 대한 한 양심수의 입장이다.

일부에서 “준법서약제에 대한 논쟁이 양심수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인권단체들은 “준법서약은 전적으로 양심수 개인의 판단과 선택의 문제”라는 입장 아래 정부에 대해 준법서약제의 철회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28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린 ‘양심수 문제와 준법서약제도에 관한 토론회’에서도 이같은 인권단체측의 입장은 강조되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박원순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는 “일부에서 준법서약서와 전향서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차이는 없으며, 오히려 준법서약서는 전향서의 확대판”이라고 지적하면서, “준법서약서는 명백히 ‘양심의 자유’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전향서든 준법서약서든 국가가 개인에게 일정한 신념의 표현을 강요하는 점에서 차이가 없으며 △구체적인 기재의 내용과 관계없이 한 개인에게 자유민주주의 법질서를 존중하겠다는 신념을 피력할 것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전향과 다를 것이 없고 △전향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에 한정해서 강요했던 것에 비해, 준법서약서는 모든 시국사범에 확장하여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상이 훨씬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석태 변호사도 “아무리 국가의 의도가 좋다고 하더라도 국가권력에 의해 의사표명을 강제받고, 이를 거부할 경우 불이익이 따르는 준법서약제도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유엔인권규약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박영관 검사(법무부 검찰3과장)는 “준법서약제는 절대 양심과 지조의 문제가 아니다”며 “준법서약제도는 법질서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 기존의 정부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검사는 또 “명분을 버리고 실질을 택해야 한다”며 “일부의 오해가 양심수들을 더욱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변호사는 “종이 한 장 쓰는 것에 무슨 난리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에게 그 종이 한 장, 말 한 마디가 얼마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며, “인권의 복원에는 절충이 있을 수 없으며, 보수세력을 의식해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승계한 준법서약서를 강요한다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85년)으로 13년째 구금중인 강용주 씨는 외부로 전한 편지를 통해 “권력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내심의 생각을 게워내고 심사받아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서약서와 타협할 수 없다”며 “차라리 서약서에 불복종해 계속 갇혀 있는 것이 내 ‘양심의 법정’에선 떳떳한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