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이스라엘 비난 결의안에 찬성
지난 15일 유엔인권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대규모 학살을 강력히 비난하는 결의안(E/CN.4/Res/2002/16)을 통과시켰다. 이틀에 걸친 치열한 논쟁 끝에 투표를 거쳐 통과된 이 결의안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과 함께, 팔레스타인 점령지구 내에서의 인권침해를 즉각 중단하고, 점령군을 즉각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한 유엔 차원에서 팔레스타인 보호를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결의했다.
아랍국가를 중심으로 제안된 이 결의안의 투표에서 캐나다, 체코, 독일, 과테말라, 영국이 '반대표'를 던져 친이스라엘 혹은 친미적인 경향을 명백히 하였다. 한편 프랑스, 스페인 등은 찬성한 반면에 이태리, 포르투갈은 기권하여 이 사안에 대해서는 유럽연합 공조체제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 참관국인 미국은 투표권이 없다.
일본, 우루과이 등도 기권을 표시하였으나 한국은 이례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한 유엔전문가는 "항상 주위 강대국 눈치를 보고 기권표만 던지던 한국이 이스라엘 비난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긍정적 발전"이라고 평가하고, "이로써 한국도 팔레스타인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지원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5일 결의안에 따라 팔레스타인 인권상황 보고를 위해 급파되기로 했던 메리 로빈슨 인권고등판무관은 지난 15일 "이스라엘의 입국불허로 인해 여전히 제네바에 머물고 있다"고 밝히고,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요청했다.
"한국정부는 테러방지법 도입을 즉각 중단하라"
이번 유엔인권위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함께 '테러방지조치에 따른 인권침해' 문제도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은 때 지난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우며 '국가안보와 주권이 인권에 우선한다'고 주장한 가운데, 지난 12일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인권을 희생하고서는 안보를 획득할 수 없다. 인권보장과 민주주의가 장기적으로 테러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민변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 의제에 관한 발언에서 "한국은 테러방지법 도입을 즉각 중단하라"는 강력한 발언을 하였다. 이날 발언에서 민변은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더해 '테러방지법'까지 도입해 국민의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특히 "국가정보원의 권력 복귀 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한편 한국정부 대표단은 '테러방지법' 발언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 지난 '양심적 병역거부' 발언 때와는 달리 특별히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아직 제정되지도 않은 법안을 두고 국제무대에서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민변의 발언 이후 곧 있을 한국정부의 반박권 행사에서 어떻게 반응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럽연합, 미국, 북한 인권상황 제기
지난주에 시작된 '각국의 인권상황' 의제에서는 서구국가들이 저개발국가들의 인권침해상황에 대해 비난을 퍼부은 반면,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들은 이에 대해 '국가안보'와 '국가주권침해', '이중잣대' 등의 논리로 반박권을 행사하기 바빴다. 중국, 짐바브웨, 콩고, 쿠바 등과 함께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논쟁도 이어졌다.
유럽연합을 대표해 스페인정부는 "계속되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유럽연합은 내년 유엔인권위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정부는 "최근의 유럽연합과의 관계 개선에도 있는 데, 왜 북한을 지목하냐"고 불만을 표하면서, "이는 국가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은 "북한정부는 어처구니없는 인권침해와 국민의 기본적 자유의 부정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북한대표단은 "미국의 상습화된 반북한적 감정을 거부한다"고 밝히면서 "미국은 지난 1886년 제랄드호 사건이후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인권침해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악의 축 발언 등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억지"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탐욕, 압제, 고문, 실업, 암살, 노숙자문제 등 국내에서 뿐 아니라 외국 군대주둔으로 해외에서까지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HR/CN/02/29) 북한은 쿠바와 함께 유엔인권위에서 미국을 공격하는 몇 안되는 국가 중에 하나이다.
한편 남한정부는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채, "세계적인 민주화 경향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국가가 있다"고 지적하며, "폐쇄경제의 실패에 따른 기아로 인해 국민들이 식량을 찾아 국경을 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북한은 반박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남한 발언의 톤이 많이 낮아졌다"고 분석하면서 "최근의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
유엔인권위에서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의제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에 관한 정부간 공방이 벌여졌다.
지난 11일 크로아티아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이미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유엔인권위의 결의안에 의해 인정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국가가 이 권리를 실행하기 위한 입법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크로아티아는 올해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인정과 대체복무입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권위에서는 오는 19일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같은 날 싱가포르는 "크로아티아가 준비하고 있는 결의안은 국가별로 특수한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부 서구국가들의 기준을 전세계적으로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국방은 기본적인 국가주권"이라고 강조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집단적 국방의 의무에 반하며, 법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인권활동가는 "싱가포르는 여전히 캐캐묵은 '아시아적 가치'와 '안보'의 논리에 사로잡혀 국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집단주의적 국가"라며, "인권을 알고나 있는 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정부는 "군 의무복무제는 특수한 국가적 상황에 따라 필수적인 것"이라고 전제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만 했다.
지난 주 민변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을 요구하는 서면발언문을 제출한 데 이어, 팍스 크리스티, 퀘이커, 아시아 리걸 리소스 센터, 팍스 로마나 등 국제적 민간단체들도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발언을 잇달아 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의 한 관계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의한 수인은 앰네스티의 수임사항에 따르면 '양심수'"라고 강조하며, "앰네스티는 양심수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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