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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인권은 언제나 정치적이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학살을 직면하며

팔레스타인 저항운동 단체 하마스1)를 목표로 지난 7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군사작전 이후,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600명을 넘어섰다. 유엔에 따르면 희생자의 80%는 민간인이라고 한다. 이스라엘군에게 돌을 집어던져도 무장저항세력이 되어 사살되는 팔레스타인에서 민간인과 무장 세력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나마 확인된 하마스의 무장 저항은 간간히 쏘아 올리는 구식 로켓포 정도다. <아이언돔에도 질긴 잡초 같은 하마스 수제 로켓포>(7.16 연합뉴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내는 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희생된 이스라엘인은 20명이며, 그 중 19명은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투입하면서 희생된 군인이다. 물론 이런 ’사실‘에 기초해서 <이-팔 양측 사망자 600명 넘어>(7.23 동아일보)라는 기사를 써내는 게 또 언론이다.

엄청난 학살극에 대한 주류 언론들의 태도는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알려진 영국 BBC의 7월 9일 뉴스 헤드라인은 “재개된 하마스의 공격아래 놓인 이스라엘”(Israel under renewed Hamas attack)이었다. 하지만 주류 언론의 적극적인 이스라엘 방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청소년 세 명의 납치 살해 주모 세력을 잡겠다며 시작한 군사작전이 부인할 수 없는 일방적 학살의 형태를 띠자, 이스라엘의 자위권 운운하며 군사행동을 지지한 미국과 유럽 정부들은 민간인 희생에 대한 우려를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인권과 인도주의의 역할

이스라엘군에 의한 학살로 600여 명이 넘게 죽는 시점에도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과 땅굴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더 이상 민간인 희생을 보고 싶지 않다.” 미국이 이렇게 말하는 데 유엔이 거들지 않을 수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모든 당사자는 조건 없이 휴전’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과 이집트가 제안하고 유엔 사무총장이 지지한 휴전안은 먼저 모든 전투를 중단하고 포괄적 논의를 나중에 시작하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당장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데 일단 총을 내려놓고 대화를 시작하자는 게 아닌가. 덧붙여 미국은 4700만 달러 상당의 인도적 지원 안을 함께 발표한다. 그런데 피해가 거의 없는 이스라엘이 중재안을 수용하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하마스가 미국의 중재안을 거부한다.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도 하마스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잘못된 이념을 사수하기 위해 민간인을 희생양 삼는 극렬 테러조직이라는 비난을 듣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국내 시사주간지조차 짐짓 중동 정세 분석을 곁들이면서 하마스를 딱 그런 무장조직으로 규정했다.

60여 년 넘게 이어진 이스라엘의 침략, 학살, 점령의 역사는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폭력의 악순환’이라는 점잖은 말로 대치되고, 이스라엘의 행동은 자국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적 권리인 자위권의 발동이 된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너무 커지면 미국과 유엔이 나서서 말리고 이스라엘은 못이기는 척 이에 응한다. 미국과 유엔은 각종 구호기금을 풀어놓으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다. 이게 이 지역에서 소위 국제사회가 인권과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했던 역할이다. 인권 말살과 침해를 반복하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제어하고 뒷수습을 하는 역할. 이번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유럽 각지에서 불붙자,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외무장관들은 ‘반유대주의’ 시위와 폭력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 빠르게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행위야말로 대상이 아랍으로 바뀌었을 뿐, ‘반유대주의’의 전형이 아닌가. 이스라엘의 학살 행위를 규탄하는 시위를 ‘반유대주의’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에 맞서는 하마스의 저항을 ‘극단적 이슬람주의 테러’로 딱지 붙이는 게 국제사회의 ‘글로벌 스탠다드 인권’이다.


인권이 발 디뎌야 할 곳

하마스는 결코 휴전을 거부한 게 아니다. 그 누구보다 휴전을 원하고 있다. 하마스가 휴전 조건으로 제시한 10가지는 대부분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지구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마스가 학살중단과 함께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봉쇄 조치는 점령-학살로 이어지는 단일한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으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군대에 의한 피 튀기는 학살만 학살이 아니다. 하마스가 밝힌 것처럼 각종 물자가 원천 봉쇄된 가자지구는 ‘조용한 죽음’을 이미 맞고 있었다. 각종 의약품, 식료품 부족에 따른 노약자들의 죽음은 전투로 인한 희생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역사를 돌아보면 이스라엘의 봉쇄가 왜 분명한 군사행동인지가 더욱 드러난다.

이스라엘이 48년 중동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국가를 건설하고, 67년 아랍국과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 골란고원,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게 된다. 이후 점령 영토를 반환할 것이 유엔에서 결의되었고, 국제법상으로도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이 확인되었지만,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했을 뿐 불법 점령을 이어오고 있다. 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려 살았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과 통치가 67년 이후 지속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는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적으로 만들고 분리장벽을 세웠고, 가자지구에서는 전면적인 봉쇄를 통한 점령과 통치를 수행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는 67년 이후부터 군사적 점령과 폭력이 시작된 것이며 갖가지 계기들을 통해 이번 사태와 같은 전면적인 공습과 학살이 반복되어 왔다.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이번 학살과 봉쇄조치가 결코 다르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폭탄테러와 같은 옹호될 수 없는 극단적인 저항이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테러 행위에 대한 비판이 결코 이스라엘의 침략-학살-점령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테러행위가 왜 발생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살아야겠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규와 의지가 가자지구에 울려 퍼지고 있다. 학살을 모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전쟁으로 둔갑시키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를 비난하면서 인도주의를 내세우는 게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옹호하는 행동일 순 없다. 인권이 발 디뎌야 할 곳은 이스라엘 행위의 과도함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고 정의를 회복하는 투쟁의 자리여야 한다.

1)하마스는 1987년 ‘1차 인티파타’(팔레스타인 민중봉기) 이후 결성된 이슬람 저항운동 단체이다.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교육, 보건을 비롯한 각종 사회 복지활동을 활발히 벌여내며 고통에 시달리는 가자 지구 주민들의 풀뿌리 정치조직이자 실질적인 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자치정부를 운영했으나 파타의 불복과 쿠데타로 인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분열된다. 산하에 무장조직으로 알 카삼 여단을 운영하며 무장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서구와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정당이자 실질적인 정부로서 하마스는 부정되고, 극렬 테러군사조직으로 규정된다. 이번 가자 지구 학살에서도 테러조직 하마스와 이들 때문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이라는 거짓 이미지와 대립구도가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