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출입국관리법과 여권법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는 출국을 금지하거나, 여권 발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그러한 이유를 판단하느냐의 점에 있어, 공안당국의 자의적 인권침해의 소지가 농후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여권발급제한의 경우, 꽤 까다로운 절차를 밟는다. 즉, 경찰청이나 안기부 등의 수사기관이 여권발급제한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에 요청을 하면, 외교통상부는 여권법 제8조 2항에 따라 법무부 검찰3과와 협의를 진행한다. 법무부 검찰3과에서는 또 국가보안법 관련 대상자들에 한해서 대검찰청 공안부에 의견을 묻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 특히 안기부의 요청이 거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법무부 관계자는 말한다.
출국금지조치도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이 요청하는 대로 남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출국 금지는 더욱 빈번해, 96년 12월 화가 홍성담 씨가 ‘출국의 자유 침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시 재판부는 이를 기각한 바 있다.
최근 들어 법무부는 출국금지가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다른 기관의 출국금지 요청에 대해 실질심사를 하고 출국금지 기준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각 기관과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고, 심사를 강화하더라도 출국금지의 구체적 사유를 모두 검토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공안당국의 자의적 판단 속에서 밀입북 혹은 회합․통신의 우려가 있다고 지목된 이들은 꼼짝없이 출국금지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 조광희 변호사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명백한 법적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국가의 이익을 현저히 해할 이유가 있는 자’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해외여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1177호
- 1998-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