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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평화행사에 또 곤봉세례

경찰, ’98 노동자문화제 원천봉쇄


지난 17일 서울대 노천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던 ‘98 노동자문화제가 경찰의 원천봉쇄와 행사 관계자들에 대한 강제연행으로 파행을 겪었다. 또 문화제 원천봉쇄에 항의하던 학생들 여럿이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입이 찢어지는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와 서울대총학생회가 공동 주최한 노동자문화제는 IMF 체제에 접어들면서 실업․고용불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모여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고자 기획된 평화적인 문화행사였다.

그러나 17일 노동자문화제가 예정돼 있던 서울대학교 주변엔 이른 오전부터 18개 중대 2천여 명의 전투경찰이 곳곳에 배치됐다. 검문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자문화제 준비를 위해 들어오던 조명 차량과 발전설비 차량이 정문 앞에서 관악경찰서로 강제연행됐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성주 정책부장도 행사 준비물을 싣고 들어오던 중 역시 연행되었다. 이처럼 행사 진행을 위한 기재들마저 압류돼 행사 자체가 축소·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관악경찰서를 항의방문했으나 전경들에 의해 번번이 제지당했다. 오후 4시경 학생들과 노동자 15명이 찾아갔을 땐, “긴급사태”라는 사내방송과 함께 경찰 1백여 명이 항의방문단을 에워싸 격렬한 비난을 샀다.

이밖에도 전경들은 학교 정문 앞에서 노동자문화제 원천봉쇄에 항의하던 학생들에게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했고, 이 과정에서 서울대 자연대 박미연 씨는 곤봉에 입을 맞아 11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결국 문화제는 예정된 시간을 한참 넘긴 밤 10시경 약식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고, 관악경찰서에 연행됐던 사람들은 장시간의 불법구금 끝에 밤 11시가 지나서야 풀려났다.


“진보진영 결집에 과민반응”

한편 이날 이뤄진 원천봉쇄에 대해 경찰은 학교측의 ‘시설보호 요청’을 이유로 들었으나, 이 또한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총학생회와 논의를 거쳐 이번 행사를 학장단 회의에 보고하기도 했던 서울대 대학본부가 행사 바로 전날인 16일 저녁 갑작스레 ‘시설물 보호요청’을 한 점은 이러한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또한 관악경찰서의 한 관계자가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던 점도 ‘원천봉쇄’라는 조치가 단지 학교측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의혹을 부채질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는 성명서를 발표, “집회도 아닌, 문화제에 대한 탄압은 과거 독재정권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며 더구나 “행사진행요원과 물품운반 차량과 기사를 10시간 이상 불법 구금하고, 항의하는 노동자․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른 경찰의 불법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 “오는 11월 8일의 ‘민중대회’를 앞두고 정부가 민주진보 진영의 결집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문화제에 대한 탄압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