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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군사독재의 망령 아직까지

20년 고문후유증 앓다 투신 자살

9일 벽제 화장터에선 전두환 군사독재의 고문 희생자 한 사람이 한 줌의 재로 변해 날아갔다. 고인(故人)은 고문 후유증으로 20년 가까이 고통 속에 살아오다 7일 오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길상 씨(39세). 고인의 자살은 딸의 돌잔치를 치른 지 일주일만의 일이라 주변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을 안겨줬다.

자신이 살던 서울 상계동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이길상 씨는 80년대 초 학생운동을 하던 중 수 차례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아 왔다. 경희대 사학과 79학번인 이 씨는 재학 당시 학생운동써클인 사회과학연구회에서 활동을 했다. 이 씨가 처음 연행된 것은 80년 5·18민중항쟁 직후, 자신의 자취방을 유인물 제작 장소로 제공한 혐의로 합동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학년이 낮아 곧바로 풀려난 이 씨는 같은 해 가을엔 이른바 '찌라시 도장사건'으로 청량리경찰서에서 1주일간 조사를 받게 된다. 이 때 이 씨는 심하게 고문을 당하는데, 수사관은 이 씨의 동료가 고문 받고 만신창이가 된 사진을 보여주며 협박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씨는 81년 '학림사건'에 연루돼 다시 연행됐으며, 당시 며칠간 조사받았는지 또 얼마나 고문당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평소 활달한 성격이던 이 씨는 그후 처음으로 청량리정신병원에서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게 됐고 이후 고문후유증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한때 이 씨는 교육대학원에 다니면서 교사의 꿈을 갖는 등 삶의 의욕을 보인 적도 있지만 최근까지 30여차례에 걸쳐 병원치료를 받아 오며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했다. 특히 2년 전 이 씨의 여동생도 같은 이유로 투신자살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연행된 여동생은 마찬가지로 심한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남동생 이귀상 씨는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에 여동생도 잃고, 형도 잃었다. 몇 푼 받아낸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날 리는 없지만 너무 억울해 어떻게서든지 국가에 책임을 물어야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귀상 씨의 작은 바램도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편 이 씨 가족들 외에도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고문으로 지금까지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해, 개인과 가족들만이 고스란히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가해진 고문에 대한 진상규명과 더불어 고문피해자들의 치유가 이뤄질 때까지 공소시효를 연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