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의문사 조사, 제3기관에 맡겨야”
“‘군’이라는 장막 앞에서는 아무 것도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각종 의문사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국방부가 의문사 재조사 방침을 밝히고 나섰지만, 정작 ‘군’이 진상조사의 주체로 나서는 것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처리과정의 개선을 위한 설명회’에는 유가족 1백여 명이 참석해 군 당국의 무성의한 조사실태와 사건에 대한 축소․은폐 기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1일 아들의 사망소식을 접했다는 이정균 씨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한계를 느낀 채 결국 아들을 화장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48가지의 의문점을 보름 간 정리해 군 당국에 보내봤지만, 이미 자살로 결론을 내린 헌병대가 재수사를 해봤자 헛일이었다”고 밝혔다. 이 씨는 또 “심지어 군 당국이 ‘민사소송이나 하지 여긴 왜 왔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유족에 대한 박대 뿐 아니라, 군 당국의 부실한 초동수사와 증거 훼손 등의 문제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설명회를 주최한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0일 사망한 한근수 씨의 경우, 군 당국이 유력한 증거물인 ‘피묻은 목도리’를 유족이 확인하기도 전에 세탁해 버렸다”고 밝혔다. 당시 군 당국은 “목도리가 한 씨 개인의 것이 아니라, 부대원들이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고 천주교인권위측은 전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고상만 간사는 “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군에서 수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군 내 사망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민간 또는 검찰 등 제3의 기관이 조사를 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유가족협의회의 허영춘 씨는 “지난해 의문사 진상규명 캠페인 도중 누군가가 영정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며 “증언에 따른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많은 증언들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훈 중위 사건과 관련, 이덕우 변호사는 “군 당국이 양심에 따라 수사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며 “현재까지 특별합동조사단에서 밝힌 어떠한 것도 당초 천주교인권위나 노여수 박사가 제기한 타살 의혹을 불식시킬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예외적인 사실만 들어 자살 쪽으로 끼워 맞추고 있음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군내 의문사 사건은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된 기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