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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육지 위의 노예선 ‘양지마을’, 그후 1년

실감나는 변화, 남아있는 문제들


‘육지 위의 노예선’ 양지마을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져 충격을 던진 지 오는 16일로 1년이 된다. 본지에서는 1년이 지난 양지마을의 현재 모습과 지난 1년간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졌던 사회복지시설의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이제는 자유롭다

“여기 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단지 양지원 원생, 노예일 뿐입니다.”

1년 전 양지마을을 방문한 조사단에게 절규하던 원생 1번, 박흥만(77) 씨, 양지마을의 역사를 줄줄이 꿰는 그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양지마을의 ‘가족’으로 있다.

“이제 자유롭습니다. 대한민국 어디도 여기 만한 곳은 없을 겁니다.”

두려움에 잔뜩 질린 표정, 말 한마디에도 눈치를 보던 쇠창살에 갇힌 원생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1년 전 4백 50명의 원생들이 노예 같은 삶을 유지하던 양지마을에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퇴소하고 1백 50명밖에 없다. 모든 것이 예전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1년간 벌어진 작은 실험들은 사회복지시설의 변화의 가능성을 크게 보여준다. 양지마을 구석구석에는 햇살이 따사로이 비추이는 이름 그대로의 ‘양지마을’로 태어나려는 몸짓이 배어 있었다.

14일 찾은 양지마을에서는 한참 일할 시간인데도 나무 그늘이나 생활실에서 자유로이 쉬거나 대화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한가롭게 다가왔다. 8개의 작업장 중에서 가방과 자전차 공장 단 두 개만 가동되고 있었다.

6년 전부터 자전차 공장에서 일을 보는 경일 산업의 윤 상무는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가족들이 자유로이 활동하고, 교육받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속이 다 편하다”고 말한다. 예전 같으면 죽을 정도로 아파도 공장으로 내몰렸고, 걸핏하면 폭행과 욕설이 난무했던 곳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고 웃음소리가 들리니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자전차 공장에서 만난 모 아무개(54) 씨는 자진 퇴소했다가 다시 자진 입소한 인물이다. 그는 “여기가 오히려 사회보다 낫다. 한달 이면 4,5십 만원이 통장에 꼬박꼬박 입금된다. 너무 자유로 하니까 일하기 싫어 안 하겠다면 그만이다. 몇 년 더 있을 생각이다”고 자신의 심중까지 털어놓는다.

3년 전부터 양지마을에서 생활한다는 김 아무개(40, 여) 씨는 “선생들이 인격적으로 대한다. 생활실에 식기건조대도 마련해주고, 밥도 한결 좋아졌다. 여자 생활실에는 세탁기도 있다”고 말한다.

‘상전벽해’는 굳게 닫혔던 철문이 24시간 개방되고, 공중전화와 우편함이 설치되어 전화와 편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다. 외출과 외박도 허용되고, 주말마다 술도 판매된다.


폐허를 인계한 노재중 일가

지난 해 12월부터 3년간 양지마을을 위탁 운영하게 된 곳은 불교 조계종 마곡사다. 원장은 마곡사 주지인 진허 스님이지만, 실질적인 운영책임자는 젊은 노휴 스님. 그는 “처음 인수받을 때만 해도 폐허였다. 노재중 일가는 전기도 끊고 사무 기기, 공장의 작업도구도 모두 팔아치웠다”고 술회한다. 젊은 스님은 “언론은 특종을 챙겼고, 인권단체는 이름을 날렸다. 실리만 챙기고 모두 떠난 뒤 양지마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인권침해나 비리문제를 폭로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사후 대책도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을 모으려 해도 양지마을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너무도 크다고 토로한다.


원생이 아니라 ‘가족’이다

양지마을의 직원은 1급 사회복지사 4명을 포함해 16명에 이른다. 이중 절반이 20대 중반의 젊은이다. 직원들이 먼저 원생들을 ‘가족’이라 부르니 원생들끼리도 서로를 가족으로 부른다. “가족들이 자유와 방종을 혼동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율적인 규율도 생겼다. 우리를 믿는 것이다.” 성기호(25) 상담원의 말이다.

이들 젊은 직원들은 의논 끝에 올 봄에는 마곡사로 가족 나들이도 다녀왔고, 모범적으로 운영된다는 서울 은평의 마을 등 시설들도 견학했다. 한글과 한자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더 나은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 중이다.


남아있는 어두운 그림자

많은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는 것이 있었다. 5m 담장은 그대로였다. 천성원 재단과 계약서를 작성할 때 천성원측이 시설의 변경은 못하도록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또, 직접적인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이규성 충남 연기군청의 사회복지계장은 그 직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씨는 노재중 전 이사장과 함께 기소되어 2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상고 중에 있다.

양지마을과 함께 폭로되었던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인 송현원은 독방도 그대로 있고, 작업도 강압적으로 하고, 운영도 바뀐 게 없다고 5월까지 송현원에 있다가 양지마을로 전원된 김 아무개 씨가 들려준다.

양지마을은 위탁 기간이 끝나는 2천1년 12월부터는 원래 양지마을의 소유주인 천성원 재단으로 운영권이 넘어간다. 노재중 일가가 다시 양지마을의 주인이 되고, ‘가족’들은 자유를 잃고 노예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노휴 스님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양지마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거듭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