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 군사정권의 횡포 앞에서 숨죽여 엎드리면서 그 기나긴 어둠 뒤에 민주주의 대명천지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것이 너무도 천진스러운 착각이었음을 뼈저리게 자각한다. 본시 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성숙 되어가는 과정이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닌 것이다.
준법서약 논쟁을 보면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준법서약제도를 주제로 한 TV토론 프로에 나가게 되어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가 텔레비젼 앞에 좌정했다. 3천 명 가까이를 특별사면하고 복권시키겠다는 8.15를 앞두고 또다시 준법서약 논쟁이 불붙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양심의 자유’를 대치시키는 양상은 작년과 다를 바 없지만, 올해는 정부가 감옥에 갇힌 양심수는 물론 모든 사면복권 대상자들에게 준법서약서를 쓰라는 요구를 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집행유예나 가석방으로 사회에 나와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서약서를 요구하는 짓은 누구 말마따나 “군사정권도 안하던 짓”임에 틀림없다.
준법서약제도 존치(存置)론자와 폐지론자 각각 2명이 벌이는 1시간 짜리 토론에 대하여 시청자의 ARS투표로 ‘승부’를 내는 포멧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양쪽 논지 각각 1분 30초, 질문과 답변 각각 5분…. 이런 식으로 숨가쁘게 진행되는 토론에서 대중들을 손쉽게 납득시킬 수 있는 주장은 역시 스테레오타입과 형식논리 편이었던 것이다.
너무도 낯익은 주장 - 북한의 위협
존치론자의 주장은 당연히 너무도 낯익은 것이었다.
첫째, 북한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항상 위협하고 있다. 둘째, 사면이란 국가의 ‘정책적 시혜’이기 때문에 서약서를 받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니다. 셋째, 준법서약은 사람의 사상을 문제삼지 않고 단지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상 양심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적 과정을 거쳐 우리 스스로 만든 법도 못 지키느냐? 넷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6.25 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친 선열들을 생각해 보라.
이 낯익은 형식논리의 위력은 압도적이었다. ARS투표 결과는 58% 대 42%로 존치론 승리…. 나는 인권운동가로서 ‘인권의 논리’가 냉전과 국가주의의 논리 앞에 이토록 허망하게 깨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묻고 싶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지금도 북한이 남한을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의도나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90년대 들어 사회주의 나라들의 동맹관계는 깨끗이 소멸되고 북한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완전한 고립상태에 빠져 있다. 그런 북한의 위협은 남한에서 준법서약제도가 존재해야 막아낼 만큼 현실적이고도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사면은 백성의 당연한 권리
‘사면’이 국가가 수인을 용서하는 행위라는 설명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독재자들이 수인에 대하여 그리도 자비로웠기 때문에 건국 이래 81차례나 사면을 했단 말인가? 사면은 잘못된 법 집행이나 잘못된 정치, 국민적 갈등으로 말미암은 국가적 파국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장치 구실을 해온 것이다. 즉 그것은 잘못된 정치, 잘못된 법, 잘못된 법 집행이 판을 치는 못난 나라에 태어나 고생하는 백성의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국가는 원래 국민에게 어떤 정치질서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에게 어떤 사상을 선택할 것을 강요해왔다. ‘민주적 선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민주주의국가’의 합의는 국민이 언제든 반대할 수 있는 합의인 것이다.
그들의 존재와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법에 의해 구속되는 그들에게 그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일은 그들의 사상에 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걸핏하면 ‘6.25 때의 숭고한 희생’을 들먹이는 짓은 비열한 ‘사상검증’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믿는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젊은이들은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라 그저 가기 싫은 전쟁터에 끌려갔을 뿐인 것이다.
분명 우리는 한반도 냉전체제를 특징지은 군사독재정치는 타도했다. 그러나 군인들이 통치했던 오랜 세월동안 그 폭력정치와 발맞추어 우리를 억압해온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 위에 존재하고 ‘국익’이 개개 국민의 인권에 우선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박혀 있으며,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실현을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
서준식(인권운동가,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 1432호
- 서준식
- 199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