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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동티모르와 세명의 영국여자들 이야기


1996년 1월 어느날 새벽 세 명의 영국여성들은 곧 인도네시아로 수출될 전투기 호크(Hawk)가 있는 랭카셔의 무기창고로 몰래 들어가 한시간 반동안 가정용 작은 망치로 그 전투기 조종석의 컴퓨터 장치를 두들겨 부쉈다. 자신들이 만든 비디오는 조종석에 올려놓았고, 무참히 살해당한 동티모르 사람들의 사진을 비행기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추운 겨울바람 속에서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새벽까지 춤을 추었다.

이 전투기 파괴사건은 1980년대 이후 평화, 인권운동가들에 의해 시작된 ‘무기를 보습으로’, 즉 무기해체운동(The Ploughshares Movement)의 하나로 매우 주목받았던 사건이다.

내가 태평양의 작은 섬 동티모르에서 벌어진 일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3년 전 바로 그 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영국기자가 찍은 인도네시아 군인들의 발포, 도망가는 사람들,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비디오 중간중간 삽입되었다. ‘당신들이 진정 인간이라면 제발 사람 죽이는 일은 당장 그만두세요’라는 한 소녀의 울먹임과 함께 자신들이 망치를 들어야 할 이유에 대한 고백도 담겨있었다. 인간에 대한 폭력에 저항해 사용한 그들의 폭력은 바로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됐다는 역설적 고백이었다.

현장체포되어 수감중인 그들에게 “당신들의 깨어있는 용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편지를 썼다. 그들은 “무고한 삶이 이유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범죄행위’와 같다. 무기산업의 고용창출만을 말하는 정부에 항의편지 쓰기, 수차례의 무기회사방문, 국회의원에 대한 로비, 거리시위등. 우리가 사용한 ‘폭력’은 마지막 수단이었다”며 긴 답장을 보내왔다.

수감 7개월 후의 1심 재판에서 놀랍게도 이들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동티모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 피고석에 앉아있던 그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들이 체포될 당시만 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언론들도 일제히 이들의 석방을 톱기사로 다루었다.

이 사건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다. 주제는 이들이 사용한 폭력. ‘어쨌든 폭력은 나쁘다’며 한 방청객이 반박했다. 멤버의 한 사람으로 나온 안젤라는 "폭력적이라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에만 성립되며, 인간을 죽이는 기계에 대해서는 성립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이 사건은 동티모르에 대한 영국사회의 관심에 불을 지폈다. 그들의 용기의 뿌리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임을, 그것은 바로 우리들 삶과 운동의 대전제임을 다시 돌이켜본다.

윤정숙(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