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로 지율 스님의 천성산 살리기 단식이 53일째를 맞고 있다. 53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단식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벌써 같은 사안으로 3번째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만큼 지율 스님에게 천성산은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옆에서 함께 투쟁하고 있는 입장에서 지율 스님은 단지 천성산 지킴이가 아니라, 고속철도로 인해 파괴되기 직전의 천성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름다운 천성산에 고속철도로 인해 터널이 생긴다는 사실, 그 터널로 인해 단축되는 시간이 불과 22분에 불과하다는 사실, 꼬리치레 도롱뇽을 비롯하여 각종 희귀생물체들이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롱뇽 소송이 자연의 법적 권리를 옹호하는 국내 최초 소송이라는 사실 등 객관적으로 들어난 사실들만을 갖고 천성산과 지율 스님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미 투쟁이 천성산이라는 하나의 산을 지키는 문제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난도질당하는 산하 ‥ 70년대 개발독재 지금껏 이어져
70년 이후 개발과 파괴의 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 곳곳은 난도질당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는 90년대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게 이어졌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각종 토목공사들이다. 북한산 관통도로, 새만금 간척사업 등 굵직굵직한 토목공사는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개 기업이 아닌-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거대 토목공사라는 점이다.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문제 또한 이 국책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건설초기부터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건설기간 내내 부실공사, 정치자금 뇌물수수로 얼룩진 고속철도였지만, 국가의 결정에 의해 진행된 토목공사였기에 모든 것이 용인될 수 있었다.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상반된 의견, 공사중단 추측보도가 나올 때마다 건설경기 침체 등을 운운하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제 신문 등을 볼 때면, 이미 이 문제가 산과 자연을 보존하는 문제를 벗어나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 맞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단지 건설업자가 무지하거나 환경 마인드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사회구조가 그동안 생명을 죽이는 개발과 파괴에 얼마나 익숙해있는지를 천성산 문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생명사랑, 평화운동과 맞닿아
또한 천성산 살리기 운동은 생명사랑 운동이자, 평화운동이다. '천성산과 도롱뇽을 살리자'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이 운동은 생명의 소중함을 잔잔하게 알리는 생명사랑운동이다. 이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도롱뇽의 친구들이 "초록의 공명"이라 부르는 생명사랑 전파활동은 지금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게시판 글 퍼다 나르기와 거리 서명작업 등을 통해 천성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작업이 계속 되고 있다. 이러한 생명사랑의 근원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있음은 물론이다. 생태주의와 평화주의는 맞붙어 있다는 거창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그 동안 천성산 살리기 운동을 해온 이들은 모두 천성산과 자연의 평화를 기원해 왔다. 다른 이들의 것들을 빼앗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화와 삶의 소중함을 조용히 전파하는 가운데 결국에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달되는 평화의 메시지는 생태계와 인간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는 혹은 화합해 나가야 한다는 소중한 울림이다. 도롱뇽이 살 수 없는 산에서 결국은 인간도 살 수 없지 않은가?
이러한 의미에서 천성산 살리기 운동은 단지 천성산이라는 하나의 산만을 살리는 운동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또한 도롱뇽이라는 한가지 자연물만을 살리는 운동도 아니다. 천성산과 도롱뇽을 위해 25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도롱뇽 소송인단을 구성하고 있다. 이후 이들은 산과 들에 있는 많은 자연물을 위해 함께 싸워갈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법적 권리 담론 확산되길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스님의 단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청와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천성산 살리기 운동으로 이제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법적 권리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율 스님은 묵언과 단식으로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단식을 통해 이 사회의 온갖 문제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말없이 몸으로 보여주는 강한 비판. 이것은 건설공사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과 이를 묵인해온 전문가들과 언론, 그리고 정부를 향한 비판이다. 또한 생태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를 생각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향한 비판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이제 시작인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문제는 이렇게 장기적인 차원에서 함께 생각하고 싸워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이헌석(청년환경센터 대표)]
** 천성산 살리기 도롱뇽 소송인단 모집을 http://cheonsung.com 에서 하고 있습니다. 많은 호응 부탁드립니다.
- 2641호
- 이헌석
- 200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