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우방이 아니었다"
"전쟁이 따로 없다. 그 날 일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리고 분노가 치민다", "미군이 없으면 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군이 떠나야 한다", "작전권이 미군에게 있으니…"
16일, 새 천년을 미군기지폭발설로 맞은 파주시 영태 5리 주민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주한미군기지에 폭발물이 매설됐다는 첩보로 인해 난데없는 대피소동을 겪었던 주민들은 지금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민들의 대피는 시에서 준비했어야할 대피차량도 없는 상태에서 예상 폭발시간인 새벽 2시를 훨씬 넘긴 새벽 3시까지 계속됐다. 또한 미군이 위험지역이라고 밝힌 기지 밖 500m 인근에 위치한 크라운베이커리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불을 밝힌 채 작업 중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주민들은 "미군이 자신들만 먼저 빠져나가고 우리를 내버려둔 것이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며, "한국군과 파주시도 첩보입수 이후 주민대피책을 세우지 않은 채 주민들을 방치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미군에 대한 문제제기 겁나"
사건이후 대책마련을 위해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 내에서는 기지이전과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자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미군주둔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걱정과 정부가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나서봤자 해결되지 않는다는 체념 어린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 지난 14일 에드워드기지 제 2사단장은 월롱면 주민 31명을 기지내 만찬에 초대해 사태경과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미군은 "한미공조체제가 잘 이뤄졌다. 불필요한 인원이 철수했을 뿐 수색을 위한 잔류군이 있었다"며 "주민들이 요구하는 유류탱크 이전과 정신적 피해 보상은 이후 안전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영태리 주민들은 "주민이 없는 한미공조체제가 무슨 소용이냐"며 심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영태5리 이장 이아무개 씨는 "지금 우리가 파주시에 가서 데모를 해야하는지 미군 앞에 가서 데모를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이번 일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 때문에 한국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한다면 북한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므로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한바탕 소동으로 무마되고 있지만, 영태리 주민들에게는 미군이 우방으로서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준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