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이리 좀 와 보렴" 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옷 갈아 입혀 드릴 시간이다. 오랫동안 중풍을 앓고 게다가 최근 골절로 하체를 쓰지 못하는 노인의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상의를 벗기고 알코올을 섞은 물수건으로 등과 가슴을 닦아내고 약을 발라 드린다. 욕창이 생긴 상처가 보인다. 새 옷을 입혀 드리는 것도 쉽지 않다.
어머니의 굽은 허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13년째 병치레를 도맡아 하신 흔적이다. 귀국 후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한 것은 어머니 고생을 조금이라도 도와 볼까 해서였다. 그러나 우리 살림살이까지 도맡아 하시려는 바람에 부담만 더 늘어난 것 같아 안쓰럽기 짝이 없다.
거동이 불편한 장기환자가 생기면 환자 자신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집안 전체에 그림자가 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집안 대소사를 처리하는데 환자에 대한 고려가 고정변수로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점은 실제 간병을 담당하는 사람의 노고에 비해 극히 미미한 부분에 불과하다. 노인의 병 수발은 아들도, 며느리도 하기 힘든 부분이다. 몽땅 배우자의 몫이 되기 마련이다. 환자에 묶여 꼼짝도 못하고 하루 24시간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세탁물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간병자, 특히 고령 간병자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 된다. 이들에게 허리디스크, 관절염, 고혈압, 소화불량이 흔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간병자는 정서적 노동이라는 과중한 짐을 져야만 한다. 환자의 투정과 감정의 기복을 스폰지처럼 받기만 해야하고, 잠깐이나마 죄스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죄책감에 사로 잡혀야 하며, 제각기 생활에 바쁜 식구들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감을 떨치기 힘든다. 간병자들이 만성우울증에 시달리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살 집이 있고 끼니 걱정은 하지 않으니 말이다. 노인부부 가정, 독거노인, 생계곤란 만성 장애인 등 경제적 요인이 문제를 훨씬 심각하게 만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뿐 아니다. 간병의 부담에는 고정관념적 성차별의 측면도 있다. 왜 보살핌의 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당연시하는가? 더 나아가 오늘날 노인 간병자들은 해방 후 세대의 심리적 자유도, 베이비 붐 세대의 성장의 혜택도, 월남전 세대의 반항적 자유도 직접적으로 누리지 못한 세대다. 요즘 간병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 권리 확보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움직임을 접한다. 경제·사회적 권리 중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이런 문제에도 우리의 눈길이 필요하다.
조효제(성공회대 시민사회단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