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제거, 생산적 고용, 사회통합 등 다뤄
여성, 노동, 장애인, 노인, 아동단체 등 적극적 참가
[뉴욕=이성훈] 95년 3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사회개발을 위한 세계정상회의」 제2차 준비위원회가 정부대표단, 정부간 기구 및 약 3백여명의 민간단체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뉴욕 유엔본부에서 지난 22일 개막되었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개막연설을 통해 “아직도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가난과 늘어가는 실업, 그리고 난민, 기아, 에이즈, 범죄 등 현재 지구촌이 직면한 사회문제는 인류의 안보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지적하면서 “사회개발 정상회담은 전세계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러한 문제들을 집단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역사적인 기회”라고 사회개발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9월 2일까지 2주간 열리는 이번 회의는 이미 본회의에서 배포된 정부대표들의 선언문과 행동강령에 대한 참가자의 의견을 듣고 이를 토대로 2차 초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행동강령에는 유지 가능한 환경, 광범위한 가난의 감소와 제거, 생산적 고용과 실업의 감소, 사회통합, 이들의 실현방안과 후속사업 등 5가지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올 1월 뉴욕에서 열린 1차 준비위에서 나타났듯이 이번 회의에서도 가난, 실업 및 사회통합을 둘러싸고 남북간의 서로 다른 입장이 표출되었다. 양측은 전지구적 문제의 심각한 증상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공감하였지만 문제의 분석과 해결방안에는 첨예한 차이를 보였다. 남측은 제3세계의 가난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매우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북의 선진국이 보다 많은 재정지원과 외채탕감 등의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북측은 재원의 효과적 배분과 효율적인 경제개발전략 등이 가난과 실업감소에 매우 중요하면서 문제를 남북간의 구조적인 불평등 무역구조보다는 남측국가의 내부문제로 돌리고자 하였다.
본회의 병행행사로 열리는 민간단체회의는 부문별 대회, 주제별 워크샵, 정부대표단과의 간담회, 지역별 모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20여개의 민간단체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본회의장에서 이미 발언을 하였다. 부문별대회의 경우 여성, 개발, 아동의 권리, 청년 등의 주제별 모임이 매일 진행되고 있다. 한편 매일 오후 2시에는 각 대회의 내용을 보고하고 정부대표의 본회의 경과를 요약, 보고하는 민간단체 전체모임이 열리고 있다.
첫날 열린 민간단체 전체모임에서 말레이지아에 본부를 둔 제3세계 네트워크의 저명한 환경운동가인 마틴 코씨는 “초안과 행동강령이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문제의 증상만 나열할 뿐 원인과 구조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초안을 비판하였다. 그는 또한 초안이 제3세계 구조적 가난의 주원인인 초·다국적 기업의 착취, 원주민의 개발의 권리 등이 제대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코펜하겐 대회가 알맹이 없는 또 다른 형식에 치우친 회의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인권봉사회의 마크 톰슨씨도 8월초 제네바에서 열린 70여개 인권단체 간담회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인권단체의 입장에서 볼 때, 구속력 없는 선언문과 행동강령보다는 이미 대다수 국가가 비준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A규약)과 이를 감시하는 인권기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며 사회개발문제에 접근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2차 준비위는 1차 준비위에 비해 민간단체의 참여가 활발했으나 아태지역의 경우 약 20여개 단체만이 참가해 다른 대륙에 비해 저조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민간단체대표단 중 반수 이상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북경세계여성대회를 앞둔 민간여성운동단체의 적극적 참여가 돋보였다. 아태지역의 경우 25일 오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민간단체의 간담회, 26일 유엔개발계획(UNDP)과 아시아 민간단체 대표단과의 간담회가 열려 사회개발회의 공동준비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 민간단체 대표단은 인권협 대표인 본인을 포함하여, 기사연의 이선태 선임연구원, 경실련 곽창규 국제국장 등 3명이 참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준비 및 논의내용 파악, 국내와 아태지역 차원에서 준비되어야 할 내용을 점검 등과 한국 정부대표단의 발언을 모니터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 여성은 물론 노동, 장애인, 노인, 청년, 아동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회개발에 대한 국내 민간단체의 이해와 관심이 매우 협소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대부분의 정부대표단이 자국의 이익에 얽매여 지구적 차원의 심각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민간단체의 적극적 참여가 사회개발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수 불가결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그나마 다행으로 보였다.
한국정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대표단을 파견하여 이번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발언의 내용도 비록 국내의 현실과 다소 차이가 있고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정부는 서대원 외무부 국제기구 국장을 수석대표로 국무총리실, 노동부, 경제기획원, 여성개발원 등의 관계공무원을 파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