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의 맞잡은 손이 한민족과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때이다. 그런데 신문에 머리를 박고 평양과 서울의 표정을 오가기 바쁜 눈이 한쪽 구석에서 찌푸려진다. 13일 오전부터 건국대, 고려대, 서울대 등 전국 20여 개 대학에서 학생들이 일제히 인공기와 태극기, 그리고 남북 단일기를 나란히 내걸면서 '잡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잡음의 배후에는 '애정결핍증'에 몸을 꼬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고양된 국민의 통일의지를 보자니, 국가보안법에게는 이번 일이 삼일 동안의 외도(?)로 치부할 일이 아닐 것이다.
인공기 게양을 둘러싼 서울 시내 주요대학 관할 경찰서 보안과의 반응을 알아보았다. 이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혼란'이다.
대부분이 학교 당국에 철거를 요청한 사실을 시인했으나, "학교 내부의 일이니 학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아직은 검찰의 명확한 지침이 없어서 적극적인 수사는 하고 있지 않다. 검찰도 고심 중이라고 들었다"고 관망하는 반면, "우리 구역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겠다", "위법 사실이 있다면 대처할 수밖에 없다"라는 반응도 여럿이었다.
학교 당국이 알아서 적극적인 조치에 나선 곳도 있다. 한양대에서는 인공기가 그려진 걸개 그림을 학생처 직원이 훼손하자 학생들이 다시 보수하여 내거는 일이 있었다. 또한 한국외대에서는 "학생처 직원이 인공기를 떼어내 경찰에게 증거물로 갖다 주었다"며 학생들이 14일 학생처에 들어가 항의농성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날 저녁 명동성당 들머리. '흥겨운' 분위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집회가 열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째 수배중인 진재영(29) 씨는 "두 정상이 악수하고 마주 앉아 화해, 협력, 통일을 얘기하는데 태극기, 인공기를 함께 달았다고 처벌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행태"라며 "설자리를 잃은 국가보안법의 철폐는 시간문제다. 이렇게 법 적용 문제부터 혼선을 빚는 것을 보면 이미 사문화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