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 국가인권위 설치 여망 고조
표류하는 정치권을 질타하며 기다려온 숱한 과제들이 1일 개원하는 16대 첫 정기국회를 맞게 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는 그중 핵심적인 사안이다.
민주노총(위원장 단병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송두환) 등 노동․인권단체들은 31일 일제히 성명을 내고 "이번 국회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국회여야 한다"며 "개원과 동시에 논의를 시작하여 회기 내에 폐지에 이를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국보법 개폐 분위기가 무르익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북관계의 호조 뿐 아니라 지난 8월 25일 서영훈 민주당 대표가 이번 정기국회에서의 국보법 개정 방침을 공식 천명했고, 30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국보법 대폭 개정의 입장을 재확인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232개 시민사회단체로 결성된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의 박석운 상임집행위원장은 "국보법 폐지가 '구호'에서 '현실'로 되는 역사적인 시기"라며 "개정에 그치는 우를 범치 않기 위해 국민 대중의 이해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폐지 투쟁에 전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대는 국회 회기 중에 '국회특별대책위'를 구성하여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한 설득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또한 국회개원에 맞춰 1일 정오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가보안법 페지 대국회 투쟁 선포식'을 가진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3년째 표류하고 있는 국가인권기구 설치 문제를 매듭짓는 것도 16대 국회가 짊어진 주요 인권과제다.
지난 30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의 5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인권국가 실현'을, 그 구체적 목표로서 '정기국회 회기내 인권법 제정 추진'을 채택한 것으로 미루어 법안 처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2일 법무부가 민간기구(비정부기구) 형태의 약체 인권위원회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인권법'(안)을 또다시 입법 예고함에 따라 국가기구로 설립할 것을 요구해온 민간단체와의 논란이 재연되고 있어 법안 처리에 따른 진통이 예상된다.
민간단체들은 국가인권기구 설치문제가 이번 정기국회에서조차 좌초하지 않으려면 법무부의 관여를 배제하고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법안이 국회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공동대책위원회'(상임공동대표 송두환, 공대위)의 곽노현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은 "법무부가 인권위원회 설치를 주도하는 것은 금고털이범에게 금고 설계를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며 "법무부는 인권위원회를 통제하려는 미련을 버리고,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의원입법 형태로 독립적인 국가기구 형태의 인권위원회 설치법을 제정함으로써 정권의 인권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공대위는 오는 5일과 6일에 걸친 대규모 토론회를 통해 자체적으로 마련한 '국가인권위원회법'(안)에 대한 각계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후 이번 국회에 입법 청원할 계획이다.
이번 국회가 인권 실현의 주춧돌이 될 국가보안법 폐지와 독립적 국가인권기구 설치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수용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