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 산 말고는 친구가 없다 GOOD KURDS BAD KURDS: No friends but the mountains 미국/ 2000/ 케빈 멕키넌 감독/ 79분/ 다큐멘터리]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없는 민족, 쿠르드족(대략 2500만 이상 추정)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접경 산악지대에 거주하면서 아직까지 유목생활을 한다.
이들 나라에서 벌어지는 쿠르드족 탄압은 쿠르드족의 민족해방투쟁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투쟁은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매우 다르게 비춰진다. 미국의 숙적 이라크에 맞서는 '착한 쿠르드'와 터키에 대항하는 PKK 게릴라 '나쁜 쿠르드'가 그것. 이라크의 쿠르드 탄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으로 이어지지만, 터키의 쿠르드 탄압에는 냉담한 반응뿐이다. 오히려 미국은 지난 10년간 터키에 10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판매했다.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는 지난 9년 동안의 쿠르드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감독초청
[바그다드의 비가 SOLOS FROM BAGHDAD 레바논/ 1999/ 사이드 케도 감독/ 60분/ 다큐멘터리]
56만명의 아동사망, 6분마다 1명의 아동 사망. 이라크 당국이 발표한 지난 10년간의 아사자 무려 135만명. 모두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가 낳은 참상이다.
"약이 있다면 벌써 나아서 학교에 다닐텐데…", "마취없이 전기충격 치료를 하는 걸 봤나요?" "셰익스피어에게 감사합니다. 그의 책을 팔아서 딸아이의 장난감을 샀어요."
<바그다드의 비가>는 지난 9년 동안이나 '경제봉쇄'를 당하고 있는 이라크 민중의 신음소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문명화된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경제 봉쇄, 이 대량학살극의 가장 큰 피해자인 이라크 민중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가려진 전쟁의 참상을 폭로한다. *감독초청
[마리아나의 눈동자 FOR THESE EYES 프랑스/ 1999/ 곤잘로 아리존 & 버지니아 마티네즈 감독/ 52분/ 다큐멘터리]
딸의 눈을 쏙 빼닮은 손녀, 마리아나. 그 손녀를 원수에게 빼앗긴 할머니는 마리아나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마리아나와 그녀의 엄마, 아빠는 독재정권에 의해 납치되고, 오직 마리아나만 살아 정보기관에 입양된다. 실종, 테러, 고문 등 1970, 80년대 남미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범해진, 또 하나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가 바로 이 것. 아르헨티나 오월광장의 어머니들 가운데 한 사람인 마리아나의 할머니는 소년의 사진을 들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결국 손녀를 찾고 재판에서도 승소하지만 마리아나는 친부모와 할머니를 부인한다.
[바람과 함께 오고 가다 COMING AND GOING WITH THE WIND 일본/ 1989/ 야나기사와 히사오 감독/ 154분/ 다큐멘터리]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정밀한 묘사, 찬찬히 기록된 그들의 공간,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당황스런 인터뷰 등 영화는 단 번에 내용을 간파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조용한 흡입력으로 감상의 흥미는 점점 깊어진다.
감독 야나기사와가 복지시설 등 공동체 생활에 카메라의 렌즈를 밀착시켜 왔던 배경에는 '인간의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야나기사와의 문제의식이 단순한 '복지시설 문제'에 머물러 있지 않은 까닭에 영화는 깊숙한 철학적 성찰로 유도한다.
[베트남 : 마지막 전투 VIETNAM : THE LAST BATTLE 영국/ 1995/ 존 필거 & 데이비드 문로 감독/ 52분/ 다큐멘터리]
1975년 사이공의 미 대사관에 남았던 미국인들이 대사관 건물 옥상을 통해 헬기로 도주하는 것을 보도했던 존 필거는 20년 뒤 다시 베트남을 찾는다.
<베트남: 마지막 전투>는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추악한 죄악을 환기시키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완성한 20세기 위대한 민족투쟁의 현재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 자본에 대한 개방정책 때문에 베트남의 빛나는 역사가 박제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감독의 조심스런 염려가 스며들어 있는 영화. '그들 방식으로 살아남기'는 희망에 불과한 것일까?
[사라 바트만의 생애 THE LIFE AND TIMES OF SARA BAARTMAN 남아프리카공화국/ 2000/ 졸라 마세코 감독/ 52분/ 다큐멘터리]
18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흑인여성 한 명이 백인의 손에 이끌려 런던으로 떠난다. 코이코이 부족이었던 그녀는 런던에서 '사라 바트만'이 되어 살아있는 전시물이 된다. 영국과 파리 전역을 돌며 신체 구석구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상한 쇼'에 팔려 다닌 사라는 제국주의자들의 의학실험 대상까지 된다. 이후 박제로 파리 인간박물관에 전시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