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생각하며
달력의 어느 장이나 그렇겠지만, 5월도 참으로 역사적인 날들이 많다. 1일 노동절은 차치하고라도, 1948년 5․10 단독선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1980년 5․18 광주항쟁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역사의 무게와 현실의 부박함이 교차하며, 문득 ‘후세대들에게 이전 세대의 고난의 역사를 옳게 전하지 못하면 결국 그들은 다시 불행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삶 그리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역사적 주체성에 대한 성찰의 시간은 정보의 폭주와 사무의 열기 속에 증발해 버리고 있다. 체계의 압력 속에 사람들은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 고난의 역사와 그 성취가 이룩한 보편적 인간성을 잊고, 사소한 이해관계에 탐욕을 내다가 혹은 작은 불행과 좌절에 부딪혀, 자신의 존엄을 너무나 손쉽게 상실하거나 방기한다.
인권의 기초인 인간의 존엄은 어디서 오는가? 신의 모습으로 빚어진 인간의 본원적 성품, 선험적 가치세계에서의 윤리적 주체성, 인간들 상호간의 공감적 감수성 등 여러 관점이 있을 것이지만, 나는 길게는 생명의 험난한 진화의 과정에서, 짧게는 인류역사의 고난극복의 장정에서 인간 존엄의 원천을 구하고 싶다.
물론 현재는 항상 과거보다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망각한 현재의 근시안적 추구는 불행한 미래로 귀결될 뿐이다. 사회의 유지와 발전은 곧 그 사회의 역사적 성과와 그 자긍심의 확대재생산인 것이며, 각자의 행․불행의 길고 짧음을 떠나서 공동체의 역사적 성취 속에 인간의 존엄을 발견하고 그 역사적 한계 속에서 사회의 과제를 인식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현재가 결코 시시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좋은 조건의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며 역사와 사회에 대하여 겸허해지고, 또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당장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우리의 역사가 그랬듯이,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고 빛내고자 하는 희망과 결의를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따라서 나는 인권교육은 역사교육이 되어야 하며, 역사교육은 인권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5월은 또한 청소년의 달이다. 우리의 현재에 축적되어 있는 희망과 좌절, 고난과 성취의 역사가 이 땅의 청소년들의 가슴에 힘차게 물결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정태욱(영남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