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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한국 감옥의 현실② 재소자의 청원, 소송이 가능한가?

누가 전과자의 말을 믿겠나

지난 봄 안동에서 “우표모으기가 취미냐?”는 뜻을 알 수 없는 추신이 담긴 편지 몇 통을 받았다.

우표 뒤에 적힌 재소자 요구

안동에서 출소한 조 모 씨가 귀뜀을 해주기 전까지 우표 뒤에 깨알같은 글씨로 ‘소장면담 사문화 철회, 변호사 교통권 보장, 청원 등 출원사항 부당저지 철회…’ 같은 요구사항이 쓰여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철저한 감시와 폐쇄적 운영속에서 재소자 및 출소자들의 재판투쟁이 아주 천천히 감옥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법원이 교도관의 소송장 접수거부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교도관의 집요한 방해를 인정, 공소시효를 불인정하게 된 것은 수많은 재소자들의 몸을 건 투쟁으로 생긴 성과다.

종이에만 존재하는 권리

‘죄를 짓고 들어온 재소자’들에게 권리라는 말은 어색하기만 하다. 이런 재소자들에게 교도관들은 하늘처럼 군림하며 이들에게 법으로 규정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재소자들은 ‘죄 값을 치러야 하고’ 지옥에 떨어진 ‘하급인생’일 뿐이다.

현재 재소자들에게 면담, 청원, 소송 등의 권리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행형법에는 재소자가 부당한 처우에 대해 적법한 절차로 항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교도관의 철저한 감시와 검열을 전제로 서신, 접견, 면담, 청원, 소송 등의 기본권이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이다.

행형법 8조의 2는 ‘소장은 신입수용자에게 형기와 접견 및 서신, 규율․징벌 및 청원 등 수용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규율과 징벌을 제외한 권리구제방법에 대해 고지 받은 재소자는 아직 만나보질 못했다.

재소자의 십중팔구는 행형법이나 청원제도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죽하면 출소자들은 “재소자가 행형법만 알아도 교도관들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재소자는 서신이나 접견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검열로 인해 재소자의 편지는 ‘허위사실 기재 또는 시설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불허되며, 심지어 법원은 판례를 통해 검열을 인정하기도 했다.

변호사접견까지 불허

인권단체나 언론사에 보내는 재소자의 서신불허가 관행화된 우리현실에서 1974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 교도소에 대한 못마땅한 의견이나 부정확한 사실의 주장 또는 선동적인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견해를 배제할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검열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접견도 마찬가지다. 교도관이 참석해 대화내용을 기록하는 일반접견의 경우 재소자들은 주눅이 들어 자신의 사정을 한마디도 말하지 못한다. 게다가 최근 들어 변호사와 재소자의 접견을 불허하기도 한다.

지난 2월 전주교도소는 조두연 변호사의 접견을 불허했으며 지난 6월에는 변호사접견실이 아닌 일반접견실에서 접견할 것을 요구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지난 5월 목포교도소는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는 재소자와 박승옥 변호사의 접견을 불허한데 이어, 박 변호사가 재심청구를 위해 선임된 사건에 대해서도 접견을 불허했다.

청원, 소송 제기하기도 어려워

주1회 이상 의무화됐던 소장의 재소자 면담 조항이 삭제돼 소장에게 직접 호소하기란 꿈도 꾸기 어렵게 됐다. 법무부장관에게 처우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청원제도 역시 별도움이 되지 못한다. 교도관들이 청원접수를 거부하거나 집필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법무부가 청원서를 접수받은 후에 접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것을 악용해 일선에서 법무부에 발송하지 않는 사례도 발견된다. 어렵게 제기된 청원에 대한 답변은 ‘소송중이거나 청원의 대상이 아니라거나, 등등…’으로 기각되거나 각하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편 모 씨는 지난해 출소 때까지 이런 답변서조차 받지 못했다.

소송도 청원과 다르지않다. 광주에 수용중인 양만신 씨는 고소장을 제출하는데 6년이 걸렸지만 결국 공소시효 2일을 앞두고 무혐의 처리됐다. 유득형 씨와 김석진 씨는 각각 청송보호감호소와 마산교도소에서 교도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해 출소 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교도관이 소송장 접수를 거부한 사실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을 판정했지만 쟁송의 원인이 된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무혐의처리했다. 또한 윤 모 씨의 경우는 청송교도관들이 고소장취하서를 위조해 접수시킨 사실을 출소 후에 알게돼 진상규명에 나선 대한변협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교도관들을 고소했으나 무혐의 처리됐다. 오히려 윤씨가 무고죄로 고소된 상태다.

“추가 형을 각오하라”는 협박

“나는 옷 벗으면 그만이지만 누가 전과자의 말을 믿겠냐? 추가(형을) 각오하라”는 말은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에게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다. 협박인 것이다. 오히려 교도관이나 법무부는 “재소자들이 인권운운하며 고소장을 남발해 교도관 인권이 사라지고 업무가 마비될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법무부가 밝힌 ‘재소자 (1년수용자가 약 6만명) 고소․고발건수는 98년 22건, 99년 48건, 2000년 8월말까지 23건으로 총 93건이지만 36건이 불기소 처리되고 57건은 진행중’이라는 점은 교도관들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