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은?
8월 17일 제53차 유엔인권소위가 막을 내렸다. 제1915호(8월11일)에 이어 소위에서 논의된 내용의 대강을 전한다. [편집자]
3.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사회권에 관한 의제에서는 세계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뜨겁게 논의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간다의 올로카-오냥고, 스리랑카의 우다가마 위원이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작년에는 WTO의 관세협정(GATT)과 IMF의 구조조정프로그램(SAP)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데 이어서, 올해는 WTO의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과 분쟁조정기구(DSB)가 선진국과 제3세계의 격차뿐만 아니라 선진국 내에서도 계급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사회권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데 결론이 도달했다. 뿐만 아니라 우다가마 위원은 ‘시애틀, 프라하, 제노아 등에서 벌어진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사례들을 볼 때, 세계화는 사회권뿐만 아니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였다.
한편 국제법적으로 세계인권선언은 갖가지 통상협정이나 경제기구보다 상위법으로 해석된다는 전반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IMF는 여전히 ‘우리는 인권과는 상관없는 단체이다. 우리에게 국제인권법 준수의 의무를 요구하지 말라’고 끈질기게 주장, 모든 위원들과 NGO의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또한 초국적기업(TNCs)의 경제활동의 인권침해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적 장치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그 범주가 애매한 ‘초국적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업’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일부의 견해와 ‘초국적기업’을 중점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견해가 위원들과 NGO들간에서도 나뉘어져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났다. 한편 이라크에 대한 경제재제가 이라크 민중의 인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4. 소수자 차별방지
소위원회의 가장 전통적인 의제인 이 분야에서는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만연한 카스트 제도 혹은 비슷한 형태의 차별제도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인도, 파키스탄 정부와 수많은 관변 NGO들이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것 자체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였다. 한편 국제앰네스티는 동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으나, 마치 국제사회의 불문율이라도 되는 듯 아무도 관련한 논의를 시작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같은 날 유엔정문에서는 가톨릭 국가와 이슬람 국가의 연합으로 유엔 NGO 참가자격을 거부당한 동성애 단체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유엔의 NGO 참가자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여러 NGO 사이에서 오고 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미국의 와이스브로트 위원은 재일교포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을 포함하는 ‘시민권을 갖지 못한 소수자들의 권리’에 관한 사전보고서를 제출하여 주목을 끌었다.
5. 여성, 현대판 노예제도
종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하는 조직적 강간, 성적 노예제에 관련된 문제들이 포함된 마지막 의제가 시작되는 날, 회의장 내에서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다. 재일교포 단체인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발언을 시작으로 하여, 일본의 몇 개 NGO, 남한의 여성단체연합, 그리고 북한정부와 남한정부 역시 차례로 종군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 미리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들을 했다. 뒤이어 중국의 판 위원과 한국의 박수길 위원도 일본수상이 2차대전 전범이 포함된 신사참배를 했다는 사실까지 언급하며 공세를 했으나 일본정부는 묵묵부답. 그러자 일본의 요코타 위원은 ‘종군위안부 문제는 복잡한 법적문제로 민간차원으로 배상이 되고 있는 중이고, 역사교과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발언하자, 박수길 위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돈으로 해결될 문제냐?’고 반박하였다.
한편 알제리의 와자지 위원은 ‘50년이나 지난 문젠데, 소위원회에 벌써 7년째 거론되고 있다. 지겹지도 않느냐? 소위원회를 양국간의 문제로 시간낭비하지 말라’고 발언하자, 노르웨이의 에이데 위원은 ‘일본이 독일만큼만 전후문제를 해결했으면 지금껏 이렇게 논의가 되겠냐? 이제 이 정도로 끝내자’고 잔뜩 달아올랐던 회의장 분위기를 수습하였다. 분위기가 가라앉고 회의가 끝나갈 무렵 일본대표가 ‘종군위안부는 이미 민간차원에서 배상되었고, 관련해서 전 수상이 이미 사과도 했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저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 신사참배는 깊이 생각한 후 결정을 내린 것이다’라고 발표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일본 정부대표들이 알제리의 와자지 위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렇게 격론이 오고 갔지만, 이후 박수길 위원이 제출한 결의안에는 ‘내년에 다시 논의한다’ 외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제안도 없었다.
8월 17일, 제53차 유엔 인권소위원회가 끝났다. 다수 위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의심스럽고 많은 수의 관변 NGO들이 난립하는 등 한계가 많았지만, 여전히 돋보이는 일부 위원들과 NGO들의 활약으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거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많은 인권문제들이 논의된 회의였다. 한편 외국주둔군, 식민지역사 청산, 집회결사의 자유, 외국인 노동자, 노동권, 수인처우 등 보편적이며 국내에서도 중요한 인권문제를 어떻게 국제적 연대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느냐 하는 숙제를 남긴 회의였다.
(김철효는 현재 ‘팍스로마나’ 인턴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