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마녀사냥이다. 통일대축전 참가자들의 언행을 빌미 삼아 시작된 이번 사냥은 강정구 교수를 구속시키는 데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강 교수의 방명록에 온갖 색깔을 덧칠한 수구세력의 광란이야 그렇다 치자. 거기에 장단을 맞춰 강 교수를 구속시킨 정부와 법원의 조처는 인권국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야만’이다.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고 ‘방명록’에 기록한 사실이 격한 반응과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은 십분 이해된다. 그러나 거기까지여야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논쟁으로 마무리지어야 했다. 하지만 당국은 ‘이성의 목소리’ 대신 ‘광기의 명령’에 복종, 강 교수를 화형대에 올렸다.
강 교수에 대한 처벌이 억지라는 점은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수사의 초점이 오로지 강 교수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파헤치는 데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만경대 발언이 국가안보에 명백하고 현존한 위협을 끼쳤는지’의 여부는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썼겠느냐’는 ‘추측’을 전제로, ‘증거를 찾겠다’며 압수수색을 벌이고, 오래 전의 일인 ‘서울대 주체사상 토론회’까지 들춰내 그의 ‘본심’을 추적한다. 거기다 검찰은 주체사상 토론회 자료집에 대해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까지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혹 재판에서 ‘찬양고무’ 혐의가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어떻게든 강 교수를 처벌하려는 술수일 뿐이다.
강 교수의 발언이 사법처리의 대상일 수 있다는 현실은 결국 보안법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북한을 방문해 “존경하는 김정일 장군님”이라고 한 정주영은 처벌하지 않아도, 강 교수는 처벌할 수 있는 법. 스스로 ‘주체사상을 찬양할 의사가 없었다’고 ‘내심’을 밝혀도 공안당국이 “그게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해 버리면 처벌이 가능한 법. 막걸리보안법, 고무줄보안법이 건재함을 이번 사태는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노리고 있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다. 이 희대의 괴물은 지금도 우리의 ‘내심’을 겨냥하면서, 칼날을 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