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접견 방해해 온 국정원 관행에 일침
'구속된 피의자와 변호인 사이의 접견을 어떠한 명분으로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시켜 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6일 서울지법 민사단독 33부(판사 심준보)는, 지난해 '민족민주혁명당'(아래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됐던 4명과 변호사 김승교·이상희 씨 등 6명이 국가와 국정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정원 직원이 변호인·피의자 접견시 사진을 찍는 등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위법 행위"며 "국가는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각각 3백만∼5백만원씩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속당한 사람이 변호인과 접견해 충분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헌법 제12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체포·구속당한 때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필수적인 내용"이며 "구속당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로서 국가안전보장, 공공복리 등 어떠한 명분으로도 제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지난해 8월 민혁당 사건 조사 당시, 담당변호사 지정서가 없다는 이유로 이상희 변호사가 피의자 최진수 씨를 접견하지 못하게 막은 바 있으며, 김승교 변호사와 피의자 박정훈 씨가 접견할 때는 국정원 직원이 접견실에 불쑥 들어와 사진 촬영을 하기까지 했다.
김승교 변호사는 "신체가 구속된 사람을 위해서는, 부당한 간섭 없이 자유롭게 피의자·변호인 접견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시켜준 데 이번 판결은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 국정원의 위압적인 접견 관행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재판부가 접견인의 동의없이 사진을 찍는 것도 위법하다고 밝힌 만큼,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정원이 접견실에 찾아 오는 사람마다 사진을 찍는 관행을 버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상희 변호사도 "이전 접견권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1백만∼2백만원 정도의 위자료가 보통이었는데 이번 위자료는 이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이는 재판부가 국정원에 대한 '징벌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국정원 직원의 불법 행위는 인정하면서 임동원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직접적 책임이 없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