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졸속추진, 각계 인권침해 우려
국가정보원이 입법예고 한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김종서 교수(배제대)는 ‘테러’의 개념부터 문제삼았다. “국가중요시설 등에 대한 ‘점거’를 포함하는 테러의 개념이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이 있다”며, “과거 미문화원 점거농성 등 정치적 항의를 목적으로 한 행위가 설사 방화나 폭파 등 행위가 없더라도 ‘테러’로 규정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박영립 변호사는 “변호인 접견을 방해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국정원이 또다시 권한을 대폭 강화하게 될 것이 걱정”이라고 한 다음 “인권과 관련해 이렇게 중요한 법안을 공청회 한번 하지 않고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입법예고기간은 보통 20일 이상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정원이 정한 입법예고기간은 10일로 돼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 또한 거세다. 참여연대에서 국제연대 일을 맡고 있는 양영미 간사는 “법을 만드는 이유도 불분명한데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은 법을 왜 국정원이 주도해서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도 “국정원이 이런 문제를 지금 갑자기 제기하는 것은 남북화해 시대에 할 일이 없어져 가는 국정원이 테러 국면을 발판으로 활로를 찾아보겠다는 몸부림이 아니겠느냐”는 의문을 던졌다.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정주연 활동가 역시 “9․11 테러 후 전세계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조만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했다”고 말하고, “앞으로 별로 크게 위험하지 않은 정치적 소수 그룹들의 저항 행동도 테러로 규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용산경찰서 소속 중견 경찰관은 “국정원이 테러의 규정을 광범위하게 설정해 놓고, 테러의 징후가 보인다는 둥, 테러와 연결될 것이라는 둥, 수사권을 야금야금 넓힐 가능성이 있다”면서 테러 수사권은 경찰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국정원과 달리 경찰 업무는 공개되어 있어서 검찰이나 언론 및 시민단체 등 감시기구가 많아 그만큼 인권침해 소지가 적다”는 것이고 “국정원이 정보업무에만 전념하는 것이 국민 여론에도 부합되는 시대적 추세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또 경찰특공대가 첨단 특공대임을 상기시키면서 “경찰의 기존 수사권을 가지고도 테러 문제에 능히 대처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테러방지법안은 앞으로 입법예고기간이 끝나면 법제처의 기술적인 검토를 거쳐 차관회의, 국무회의의 의결, 대통령의 재가를 거치고 국회로 상정된다. 국회에서는 정보위원회 심사를 거친 뒤 본회의를 통과해야 법률로 제정되는데 국정원은 이 모든 과정을 12월 8일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끝마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