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인권침해와 직권남용의 주범으로 지탄받아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을 돌연 입법 예고했다. 국정원은 최근의 국제테러에 대한 대응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국정원이 젯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번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대테러대책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국정원장이요, 대테러센터도 국정원 수하에 두게 되어 있다. 국정원은 ‘테러 예방’이라는 이유를 들이대면 현재 경찰에게만 허용된 무기의 사용권도 가질 수 있으며, 심지어 군 병력의 동원까지 요청할 수 있다.
지금도 권력이 넘쳐나 틈만 나면 조직사건을 터트리고 민간인 사찰을 일삼는 것이 국정원이다. 국정원의 수사권이 확대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며, 대테러활동은 현행 법령과 경찰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볼 수 있다. 국정원은 활동 자체가 공개되지 않아 권력남용의 소지가 많다는 주장이 일선 경찰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국정원은 ‘적용의 대상을 최소화해 인권침해의 소지가 없다’고 능청을 떤다. 나아가 내년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의견수렴도 없이, 한 달이 채 못되는 기간 내에 졸속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으로 지탄받는 이유는 국가기관이 그 모호한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데 있다. 이번 테러방지법도 모호하고 광범위한 테러의 개념을 악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권침해의 복병이 테러방지법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불고지죄’가 등장하고 있으며, ‘테러단체 구성․가입죄’는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구성․가입죄’를 연상케 한다. 사법부의 고유한 판단권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외국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정보자료의 증거능력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참고인의 구인․유치 조항이나 구속기간의 연장 조항 모두 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한번 만들어진 법은 끊임없이 자기논리를 개발하며 끈질기게 생존해 나간다. ‘악법이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외침에 결코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50년이 넘는 국가보안법의 역사를 통해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제2의 국가보안법’이 될 테러방지법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국정원은 대 국민 테러를 즉각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