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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계수의 인권이야기

무책임한 인권운동가들?

수사기관, 정보기관들이 권한을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가졌더라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테러리스트 11명 중 몇 명은 사전에 적발했을 것이다. 이들을 제지하지 못한 것은 인권운동가들 때문이다. 그들은 수사기관, 정보기관의 권한확대 얘기만 나오면 반대한다. 참 무책임하고 철없는 자들이다. 잭 스트로(Jack Straw) 영국외무장관의 최근 발언내용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이 기사를 읽고 기가 찼다. 도대체 누가 무책임하고 철없는 자들이란 말인가.

미국, 독일, 그리고 유럽연합 등지에서 날아오는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들은 이른바 ‘테러분자’라는 새로운 적과 싸우기 위해 ‘테러방지법제’를 강화하려고 한다. 아직은 입안단계에 있지만 곧 각종 반테러법들이 의회를 통과할 거라는 전망이다. 독일의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성탄절까지 일을 매듭지으려고 서두르고 있다.

이들 정부는 이렇게 말한다: 테러분자들은 과거의 적들과 다르다. 그들은 실체도 없으며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과 싸우려면 온 사회를 이 잡듯이 뒤지고 도청하고 감시해야 한다.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외국인은 모두가 잠재적 테러분자들이다. 국민을 테러분자로부터 보호하려면 국가기구의 권한확대가 절대 필요하다. 정보기구와 수사기관 사이의 엄격한 분리원칙도 이제는 폐기해야 한다. 입국심사를 엄격히 하고 국내체류 외국인에 대한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테러범죄의 법정형량을 늘려야 한다. 필요하면 군대가 나서서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슷한 얘기를 우리는 지난 한달 동안 한국에서도 들었다. 지난 11월 6일 정부는 이른바 ‘테러방지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11월 12일 국가정보원은 ‘테러방지법안’을 입법예고 했다. 두 번의 내용 수정 끝에 12월 4일 현재 이 법안은 국회에 가 있다. 정부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8일까지 입법절차를 끝내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국정원)는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월드컵을 앞두고 시간이 없는데 문제가 생기면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시민인권운동세력이 책임질 건가? 참으로 무책임하고 철없는 반대만 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무책임하고 철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자. 시간이 없다지만 “서두르면 일 망친다”는 말도 있다. 테러방지법을 통해 실제로 테러를 방지할 수 있는지 따져보자는 얘기다. 시민인권운동단체들은 정부가 테러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그 사실을 정부가 입증해야 한다. 국가는 그 권한의 확대에 앞서 그 권한확대(=자유축소)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입증해야 한다. 시민인권운동가들은 무책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증책임분배원리에 따른 국가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계수 씨는 울산대 법학부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