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 수지김 사건 관련 73명 조사

말단 김 모 씨에 모든 책임 전가


수지김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조작·은폐한 전 안기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는가? 이에 관해 한겨레21 김소희 기자의 특별기고글을 싣는다.<편집자주>

"홍콩에 사는 한 사업가가 미모의 북한 여성공작원에 의해 납치되려다 간신히 도망쳤다."는 것으로 조작됐던 수지김 사건.

검찰은 1년 7개월여 수사를 거쳐 지난해 11월13일 공소시효를 불과 두 달 앞두고 윤태식을 수지김 살해혐의로 구소기소했고, 곧이어 단순살인사건을 납북미수사건으로 둔갑시켰던 안기부의 조작은폐 내용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윤태식은 87년 1월 부부싸움 끝에 수지김을 살해했다. 윤씨는 북한대사관을 찾았다 거절당한 후, 미국대사관을 거쳐 한국대사관으로 와서 "납북되려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당시 안기부의 해외공작국 직원들은 윤씨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의심해 기자회견을 보류하도록 본부에 건의했고 1월7일 저녁 9시께 현지 기자회견 전면보류 결정이 났다. 그러나 불과 4시간 뒤인 1월8일 새벽 1시께 "부장의 지시다, 국가정책 판단"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 강행지시문이 여러 통 싱가포르에 하달돼 단순 살인범을 반공 영웅으로 둔갑시키는 조작극이 시작된 것이다.

윤태식을 서울에 데려와 조사하자마자, 안기부는 곧 윤씨의 거짓말을 알았으나 그냥 덮어버렸다. 13년 뒤 다시 안기부는 진실을 은폐했다. 검찰의 수사발표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0년 2월 경찰의 내사를 눈치채고 이무영 당시 경찰청장에게 김승일 대공수사국장을 보내 내사 중단 압력을 넣었다.

그렇다면 87년과 2000년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검찰 수사에 따르면 안기부는 윤씨를 풀어준 뒤부터 계속 밀착 감시했고 91년부터는 출국금지를 시켰다. 그러나 87년 당시 실무 수사관이자 그 뒤로 윤씨를 관리했다는 김아무개(55)씨는 현재 도망친 상태이다. 장세동 전 부장을 비롯해 87년 당시의 조작은폐 책임자들이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나 이들은 모두 업무가 인수인계돼지 않았다고 말했고, 경찰 내사를 중단시켰던 김승일 전 국장 역시 이 사건을 "캐비닛을 뒤져 찾아냈다"고 진술하고 있다. 정황 상 입을 맞춘 것이 분명한데 이를 반박할 증거와 자료는 없는 형편이다. 검찰은 사라진 김씨를 잡아야만 안기부가 윤씨를 '관리'한 내용과 실체, 책임선이 드러날 거라고 말한다.

김씨는 98년 국정원을 퇴직한 뒤 이듬해부터 윤씨가 대주주인 패스21의 자회사 이사직에 등재됐고 윤씨에게 2천만원을 갈취한 혐의(공갈)로 수배된 상태다. 그가 안기부의 대표자격으로 윤씨를 관리하기 위해 인연을 이어간 것인지, 윤씨에게 정관계 로비스트로 고용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윤씨의 돈을 노리고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은 것인지 알 수 없다.

87년 당시 현지 대사관 관계자들을 비롯해 조작은폐에 가담한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 해외공작국의 실무자들까지 모두 73명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법정에 서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조작의 최고책임자였던 장세동씨 역시 공소시효 만료라는 법망 뒤에서 "검찰 수사에서, 기자회견 재 지시 전문을 처음 보았다" "안기부는 나마저 속였다" "관계자들이 알아서 처리(검찰로 송치)할 줄 알았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87년 1월 안기부의 조작은폐 과정에서 2000년 2월 국정원의 경찰 내사 중단압력 과정까지 13년 동안의 진실은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사라진 김씨의 안기부(국정원) 내 '보고라인'에 대해 검찰은 적극적인 수사를 펼치지 않고 있다. 간첩조작은폐의 전모를 밝히고 책임져야 할 국정원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간첩의 가족'이라는 천형과도 같은 포승줄에 묶여 15년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온 수지김의 유족들을 정작 죄를 지은 국가기관이 계속 짓밟고 있는 것이다.

<정정> 24일자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 중 일리야 씨는 '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요양했고, 위탈리 씨는 업무 중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