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가인권위원회를 두고 말들이 많다. "도대체 하는 일이 없다"는 질책에서부터 직원채용을 둘러싼 잡음과 의혹에 이르기까지 온통 인권위를 쥐흔드는 이야기들이다. 누구보다도 인권위원회의 설립을 갈망해 왔고, 또 투쟁의 대열에 동참해 왔던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기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사실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될 때, 인권위에 대한 기대의 반은 접었었다. 인권위원회가 실질적인 구제기관으로 역할을 하기엔 태생적으로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머지 절반의 기대가 있었다. 제도적 허점과 장애는 '사람'을 통해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실질적 구제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부당한 국가권력 행사에 쉼 없이 저항하고, 인권피해자들의 아픔을 성실히 대변해 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제도적 난관에 부딪혀 보기도 전에 벌써부터 인권위가 삐걱거리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나는 그 이유를 '사람'에게서 찾는다. 몇몇 인사들의 독선과 그로 인한 인권위의 폐쇄적 운영이 계속해서 잡음을 낳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회의 비공개원칙과 인사과정에서의 불투명성이다.
인권위라고 해서 부패하기 쉬운 권력의 속성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다. 그 부패의 가능성을 뿌리부터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인권위는 철저히 국민들 앞에서 발가벗어야 한다. 그럼에도 왜 기성 권력기관의 타성과 관행을 좇아가려 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또 최근 인권위의 게시판을 도배질하고 있는 인사잡음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결자해지의 태도를 보여야 마땅하다. 일체의 '정보'로부터 차단된 당사자들이 '의혹'을 갖고 해명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 나는 '의혹'에 실망하기보다 '침묵'에 실망한다. 인권위의 침묵으로부터 읽히는 것은 권위의식과 오만함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인사위원회의 구성과 인사기준, 채용자의 면면을 공개한다면, 더 이상 잡음과 루머가 설자리는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모든 잡음과 실망이 인권위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인권위 무용론'과 '인권위 포기론'이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인권위에 '희망'을 건다. 인권위는 인권피해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거점이기 때문이다. 그 거점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인권전선이 몇 발 더 후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인권위원회를 흔드는 것은 채용에서 탈락한 응시자들도, 비판적인 인권단체들도 아니다. 인권위를 전유하려는 소수의 엘리트의식이야말로 인권위의 근간을 뒤흔드는 암초다. 나는 인권위가 굳건히 서기를 갈망한다.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싶은 민초들의 시선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