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헌법재판소(주심 김경일 재판관, 아래 헌재)는 준법서약제도를 규정한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아래 가석방규칙)에 대해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선고해 파문이 일고 있다.
준법서약제도는 장기수 등에 대한 사상전향제도를 대체해 98년 8월 15일 처음 실시됐다. 현 가석방규칙은 국보법 위반자, 집시법 위반자 등에 대해서 가석방 전에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게 하는 내용으로 그해 10월 만들어졌다. 그간 인권단체들은 준법서약제도가 개인의 사상과 신념을 강제로 표명하게 하는 사상전향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폐지를 주장해 왔다.
준법서약은 명령이 아니다?
하지만 헌재는 "준법서약은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서약에 불과"하고, "가석방은 수형자에게 주는 은혜적 조치일 뿐 수형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가석방규칙은 수형자에게 준법서약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형자는 "수혜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권고를 거부함으로써 … 자신의 양심을 유지, 보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어 '준법서약서가 소위 시국사범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 "남북한의 대결상황에서 북한은 여전히 대남혁명전략을 추구하고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며 차별을 합리화했다. 시국사범에게 '국법질서 준수의 확인절차'를 더 거치도록 하는 것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방어하는 정책수단으로서 적합하다는 것이 헌재의 논리였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김효종 재판관 등은 "가석방규칙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 등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설령 그러한(폭력적인 국가전복을 시도하는) 자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있어도, 그들로 하여금 …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게 대한민국 법의 준수의사를 강요하거나 고백시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다수의견을 반박했다.
실망스럽고 위험한 결정
이날 헌재의 결정을 접한 인권단체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가협 송소연 간사는 "실효성이 의심되는 준법서약서에 대해 헌재가 다시 손을 들어준 것은 너무나 실망스럽고 위험한 결정"이라고 평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주영 캠페인팀장은 "기본적으로 준법서약서는 한 인간의 사상을 검증하는 절차에 다름 아니"라며 헌재의 논리를 반박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성명에서 "인간의 내면에 기어코 간섭하여 통제해야겠다는 억압적인 반인권제도를 엄호하는데 헌법재판소가 오늘 온몸을 내던졌다"며 합헌결정을 규탄했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를 대리했던 김승교 변호사는 "헌재의 결정이 남북관계를 근거로 차별을 합리화한 냉전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백번 양보해 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헌재는 준법서약제도가 왜 (국보법 위반자가 아닌) 집시법 위반자에게까지 확대 적용돼야 하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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