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헌법재판소(아래 헌재)는 준법서약제도를 규정한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에 대해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 규칙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위반, 집회및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수형자에 대하여는 가석방 결정 전에 출소 후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게 하여 준법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게 되어있다.
사상전향제도를 대체해 98년에 실시된 준법서약제도는 양심수 대석방에 대한 국내외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양심의 법정'에서 떳떳하길 원한 양심수들을 향해 김대중 정부는 선처를 베풀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강변했다. 그 강변은 헌재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헌재는 "단순히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을 요구하기에 국민의 "일반적 의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며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수형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거부하면 그만이지 다른 법적 불이익이 부과되는 것이 아니니 알아서 처신하라 한다.
또한 준법서약서가 소위 시국사범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하여 헌재는 냉전적 사고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남북한의 대결상황에서 국가의 존립보장을 위하여 방어적으로 대처하지 아니할 수 없기에 해당 수형자들이 지니는 "차별적 상황"을 "합리적"으로 감안한 것으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국보법이나 집시법 위반자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을 방어하는 정책수단으로서 적합하다니, 양심수들이 국가의 강제에 의해 자신의 내면을 게워내야 이 나라가 안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같은 헌재의 논리는 퇴행과 후퇴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의 자유는 내면적 사고의 자유에 그치고 양심을 표명하는 자유까지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돼왔다. 국제인권규범이 정한 사상․양심의 자유는 '침묵할 자유'를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양심을 추구할 자유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소수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번 헌재의 판결은 그나마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침묵할 자유'마저도 허용치 않는 뒷걸음질이다. 또한 양심을 지키려면 불이익을 감수하면 될 것 아니냐고 감히 설교하고 있다. 국가의 설교가 있기 전에 양심의 자유자들은 이미 그런 실천을 해왔다. 국가의 몫은 가당찮은 설교가 아니라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