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병원, 직권중재 악용 ‘불법파업’ 유도
병원 노동자들이 직권중재제도의 올가미 아래 장기파업과 감옥행의 가시밭길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파업 중인 보건의료산업노조 간부 14명에겐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다. 그 중 한 명인 보건의료산업노조 차수련 위원장은 이번에 체포되면 벌써 다섯번째다. 이는 병원을 비롯해 이른바 ‘필수공익사업장’의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봉쇄하고 있어 위헌시비가 일고 있는 직권중재제도 때문.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철도․시내버스, 수도․전기․가스․정유, 병원 등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중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직권중재에 회부된 상태에서 파업을 벌이면 이는 곧 ‘불법파업’으로 규정된다. 이처럼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되면 노조 간부들은 구속, 가압류, 고소․고발 등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엔 노조 파괴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차 위원장은 “병원 경영진들이 이같은 직권중재제도를 악용해, 노조와의 교섭 자체를 회피하고 고의적으로 불법파업을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12일로 파업 21일째를 맞은 가톨릭 중앙의료원(강남․여의도․의정부 성모병원)이다. 의료원 측은 불성실한 교섭으로 노조의 파업을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파업 돌입 후엔 ‘불법파업’을 빌미로 노조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고 차 위원장은 말한다. 애초 노조가 요구했던 것은 △임금 인상 △공정한 인사승진기준 마련 △사학연금의 본인부담금 축소 △파업과 관련한 불이익 및 징계금지. 그러나 의료원 측은 파업이 예고된 23일 새벽까지 아무런 대화 노력을 기울이지 않다가, 새벽 5시 반께 ‘조합원들이 병원 로비에 모두 모여 있기 때문에 본 교섭을 못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나아가 파업 첫날 아침부터 거의 매일같이 “어떠한 파업도 불법이며 근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법에 의거해 인사상․신분상․경제적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유인물을 뿌리며 노조원들을 협박했다. 또 의료원 측은 약간의 임금인상 외사학연금이나 인사 관련 문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더니 파업 나흘째부터는 △무노동․무임금 △노조간부 징계 등을 덧붙이며 대화의 싹을 잘라버렸다.
차 위원장은 “이는 대부분 다른 병원들이 파업 전날 밤샘 협상을 통해 원만한 노사협상 타결을 이룬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산업노조에 따르면, 90여 개 사업장 중 가톨릭 중앙의료원 등 6개 병원을 제외하고 모든 병원이 파업 전날 밤 내지는 파업 이틀 내에 타결을 봤다.
병원 측의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27명이 고소․고발당해 소환장이 발부된 상태이고, 6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의료원 측은 ‘의료원 소식’이란 유인물을 통해 “외부 집행부의 주도로 우리 병원과 일터가 파괴되고 있다. 그들을 몰아내고 현업으로 복귀하라”며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파업을 불순세력의 개입에 의한 것처럼 매도했다.
또 친인척들까지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파업 이탈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강남성모병원노조의 이숙희 상황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조합원의 아버지를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조합원의 조카가 산부인과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데 갑자기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는 등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업무에 복귀한 사람에게 노조를 탈퇴하라고 종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지난 10일엔 72명의 조합원들이 징계위에 회부됐고, 노조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의료원 측은 공권력 투입까지 경찰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차 위원장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인데, 사랑과 평화 등 가톨릭 정신을 실현하기는커녕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전근대적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차 위원장은 “지금으로선 노조 탄압에 저항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며, “구속 등 희생이 예상되지만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7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직권중재 회부시 쟁의행위 금지조항’을 어겼다는 이유로 올해 초 구속기소된 가스노조 박상욱 위원장 등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려, 이것이 병원노조의 파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기대되고 있다.
법원은 “조정기간은 분쟁을 사전 조정해 쟁의발생을 막으려는 데 기본 취지가 있는 것이지, 쟁의 행위 자체를 금지하려는 게 아닌 만큼 ‘직권중재 회부시 쟁의행위 금지조항’을 어겼다고 해서 무조건 불법파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