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의 약값 인하를 요구하며 싸워 온 지 1년이 넘었다. 하지만 글리벡을 생산하는 노바티스사는 지적재산권을 방패삼아 꿈쩍도 않고 있다.
노바티스는 지난 14일 정부와의 약값 협상에서 2만3천45원을 최종가격으로 못박고 이것이 아니면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환자들은 하루에 4알 내지 8알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데, 노바티스의 요구대로라면 1인당 한달 약값만 월2백76만원에서 5백53만원이다. 보험 적용을 한다손 치더라도 월 83만원을 약값으로 털어 넣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 이러한 약값을 부담하기란 불가능하다.
글리벡은 기존의 백혈병 약과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어 '기적의 신약'이라 불리지만, 결국 다국적기업의 끝없는 탐욕 탓에 사 먹을 돈 있는 사람들만이 그 약효의 '기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노바티스가 높은 약값을 고수하는 이유는 '전세계' 글리벡 약값이 균일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월등히 높은 미국․스위스․영국․일본 등 선진국의 약값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가. 브라질에선 글리벡을 6개월 간 무상공급하고 이후 1알 당 1만6천원에 판매하기로 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노바티스가 글리벡 개발에 많은 돈을 들였을테니 그 이상의 수익은 보장해줘야 한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시판 8개월만에 노바티스는 이미 약 1천7백만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려 최소한 임상실험에 든 비용을 회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글리벡 개발에 많은 비용을 댄 건 노바티스가 아니라 미국 국립암연구소, 오레곤 암센터 등 공공기관이란 점은 여기서 더 얘기 않겠다.
한심한 건 우리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6개월 동안 정부고시가조차 거부해온 노바티스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일관하더니, 최근엔 노바티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보험재정을 염려해 만성기 환자의 글리벡 복용에 대해선 보험적용도 하지 않는 정부가 선진7개국 수준으로 약값을 맞추는 건 무슨 모순인가.
지난 해 약값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에 함께 했던 환자 중 5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백혈병 환자들은 "약이 없어 죽을 순 있어도 돈이 없어 죽을 순 없지 않냐"라며 정부와 노바티스를 향해 절규하고 있다. 노바티스와 정부는 환자의 생명을 건 죽음의 흥정을 당장 중단하라. 환자들이 먹을 수 없는 건 더 이상 약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