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나라에선 전기요금 고지서만으로도 투표
6·13 선거에서 신원확인을 받지 못해 참정권을 박탈당한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23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구인인 윤현식 씨는 "서울 광진구 화양동장이 2002년 6월 7일 주민등록등본 또는 초본에 청구인의 사진을 첨부한 증명서를 발급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해, 헌법상 보장된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당했다"라며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도록 대통령 선거일 이전에 화양동장의 처분에 대해 판단을 내려줄 것"을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
당시 윤 씨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주민등록등본에 사진을 첩부한 증명서가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란 답변을 듣고 화양동사무소에 이를 요청했으나, 동사무소에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에 따라 윤 씨의 요청을 거부했다. <본지 5월 14일, 6월 4일, 6월 15일 참조> 이에 지문날인제도에 거부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은 윤 씨는 결국 지난 6·13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없었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발급한 다른 신분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 씨는 소장에서 "화양동장의 처분은 단순히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증명서의 발급을 거절한 것으로서, 공공기관이나 관공서가 발급한 증명서가 없는 사람의 선거권의 행사를 원천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기본권 침해행위"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번 헌법소송의 대리인인 이은우 변호사는 선거에서의 본인확인 절차가 주민등록제도를 기본 전제로 삼고 있으며 지나치게 까다롭고 행정편의적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공직선거관리규칙 제10조에 따르면, 선거인명부는 주민등록표에 의해 작성하게 돼 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이나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의무는 다 부과하면서 국민으로서의 권리인 참정권은 보장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선거 시 신분 확인 절차를 최대한 간편하게 운영해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발급하는 신분증을 잃어버렸거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참정권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다른 나라는 대부분 국가신분등록 체계가 없기 때문에 선거인 신분 확인 절차가 훨씬 간편하다"라며 "미국의 경우, 선거인 명부에 서명만 하면 투표를 할 수 있게 하는 주가 많고 증명서를 요구한다 해도 신용카드, 전기나 가스 등의 요금 청구서 등을 증명서로 인정하는 주도 많다"고 말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도 "일본에서도 투표 통지표만 보이고도 투표를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문날인반대연대는 "국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지문날인 제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참정권까지 박탈당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며 앞으로 대선 때까지 참정권 보장을 위한 신분 증명 책임을 방기한 행정자치부 앞 화요일 1인 시위와 '신분증명제도와 국민기본권' 토론회 등의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