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확인증’은 투표를 장려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공직선거법 6조 2항에 따라 투표를 한 사람에게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국공립유료시설 이용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이다. 선거 하루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18대 국회위원 선거가 역대 최저투표율이 될 것을 우려하며 투표를 한 사람에게 투표확인증을 배포한다고 밝혔다. 또한 선관위는 투표를 호소하는 이메일과 문자 보내기, 홍보 책자와 포스터 배포 등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나에게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정말 선관위는 ‘투표확인증’을 주면, 사람들이 투표를 할 것으로 기대했을까?
투표를 하는 사람에게 ‘투표확인증’을 발급하는 선관위의 발상은 투표율이 낮은 원인을 유권자에게 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투표율이 낮은 원인은 국민의 손과 발을 묶고 입을 막아버린 선관위와 공직선거법에 있다.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따라 유권자들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후보들에 대한 어떤 지지와 비판도 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103조 3항에 따라 선거기간동안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집회도 개최할 수 없다. 집회를 열면 경찰뿐만 아니라 선관위 직원들이 사진을 찍고 메모를 했다. 한 시민은 지난 대선 기간 집회장에서 받은 선전물을 다음날 출근길에 나눠줬다고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또한 공직선거법 82조 6항에 따라 인터넷 언론사는 선거기간 중에 게시판이나 대화방에 이용자들이 실명을 쓰도록 기술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용자들은 자신의 실명을 인증 받은 후에야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대표를 선택하기 위해서 후보에 대해 알고, 정책에 관해 입장을 밝히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자연스런 의견 형성의 기회를 봉쇄한 채 ‘투표확인증’을 주는 방식은 사기극이다. 참정권은 단지 투표일에 도장 찍는 것으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진심으로 선관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이 참정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면, 소통을 가로막는 공직선거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18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46%로 역대 선거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투표율이 내려간 원인을 두고 많은 언론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한다. 한편으로는 ‘투표확인증’과 같은 우대조치보다는 ‘패널티’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고 선전하기도 한다. 언론들이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내가 뽑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공약과는 다른 행동을 해도 어찌해 볼 수 없는 형식화 된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획이 없는 한 낮은 투표율은 계속 될 것이다. 또한 낮은 투표율을 유지하고 싶은 세력은 투표확인증을 계속 제작·배포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일 것이다.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리는 참정권이 보장되기 위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참정권을 제한하는 법에 대해 “아니요”라고 하면서, 저항할 수 있는 방식이 투표하는 것 외에 없는 걸까?
덧붙임
승은 님은 인권운동사랑방(http://sarangbang.jinbo.net)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