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변혜진의 인권이야기

특허와 이윤에 의한 고의적 살인


지난 12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영국의 지적재산권위원회의 특허권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 환영논평을 냈다. 지적재산권위원회는 '가난한 나라들이 특허보호에 대한 서구기준을 채택하면 많은 것을 잃을 것'이라며 의약품특허를 규제하거나 아예 의약품특허를 가능하면 늦추라고 권유하고 있다.

TRIPs로 알려진 WTO의 특허협약은 선진국을 제외한 주변국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에 큰 문제를 낳고 있다. 특정지역 성인인구의 1/4이상이 에이즈에 감염됐을 정도로 에이즈가 심각한 문제인 사하라남부 아프리카나 남미는 특허에 의한 에이즈치료제 가격 상승으로 고통을 받고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특허로 인한 글리벡의 고가 약가 정책으로 인해 백혈병 환자들이 고통을 받고있다.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은 죽음을 선고받은 많은 환자들에게 과학발전에 의한 복음이었으나 그 '복음'은 곧 글리벡 가격에 의해 '사망선고'로 바뀌었다.

글리벡 약가인하를 주장하면서 1년을 넘게 목숨을 건 투쟁을 해 온 환자들의 슬로건은 '이윤보다 생명이다', '약은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급돼야 한다'였다. 그러나 사적시장에 기초한 의료체제를 운영하는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며 불가능한 요구인양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든 죽지 않고 살 권리가 있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 인권이다. 고통을 치유할 약이 있는데 돈이 없어 이를 사 먹지 못하는 사회는 너무나 끔찍한 사회다.

특허는 본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출현한 제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특허가 공공성을 보장하긴커녕 거대기업들의 독점적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배타적 권리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는 기업의 이윤보다 선행하는 생존권의 문제로 의약품의 특허와 접근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떤 학자는 말한다.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필수의약품의 접근권을 강화하라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한국은 주변국이 아니라고. 그러나 되물어 보자.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병이 걸려 치료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다'. 그들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던 약을 사 먹을 수 없는, 접근권을 박탈당한 국민일 뿐이다.

모두는 언제든 병에 걸릴 수 있는 잠재적 환자이다. 글리벡 약가인하와 보험적용 투쟁에 관한 현재의 문제는 백혈병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 있으며 이는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끔찍한 세상을 뒤바꾸는 싸움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의약품은 사고 싶지만 너무 비싸서 사지 못하는 손목시계가 아니고, 또 하나 가지면 좋을 장식용 목걸이가 아니다. 공공재로서의 의약품, 국가는 이제 그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아픈 환자들에게 약을 정상적으로 공급할 의무가 있다. 또한 목숨을 담보로 죽음의 거래를 행하고 있는 노바티스의 특허로 인한 독점적 이윤을 중단하기 위한 조치가 즉각 진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