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바닷가에서, 나는 그저 손가락을 꼽아가며 헤아리고 있다. 하나, 둘, 세 명, 네 명, 네 명 죽었다 다섯 명 죽었다 여섯 명 죽었다, 마흔두 명 죽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더듬고, 걷지 못해 휘청거리고, 소리를 듣지 못하고, 죽어갔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일을 겪으며 『슬픈 미나마타』를 썼다. 1956년 발견된 미나마타병의 원인은 공장에서 배출하는 수은이었다. 문제의 질소공장이 미나마타에 진출한 것은 1906년,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이 이미 적지 않았고 병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유를 알게 된 사람들은 더욱 원통하게 죽어야 했다. 10년이 넘도록 일본 정부는 공해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고, ‘신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는 진정한 사과도 없이 보상으로 문제를 덮으려고만 했다.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은커녕,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며 40년의 세월이 흘러 정부는 겨우 해결책을 제시했다. 미나마타병은 과거의 것이 되었을까. 이유를 모른 채 혹은 알지만 무시당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유해물질 알 권리 특별보고관이 왔다
지난 12일 유엔 특별보고관 바스쿳 툰작(Baskut Tuncak)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유해물질 및 폐기물의 환경적으로 건전한 관리 및 처리’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특별보고관이다.(이하 ‘유해물질 알 권리 특별보고관’) 유엔은 유해물질 및 폐기물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면서 1995년부터 특별보고관을 임명했다. 이 권리의 핵심은 유해물질과 폐기물에 관한 정보를 알 권리다.
1982년 이후 개발된 약 2만4천여 개의 새로운 물질 중 1만5천 개 가량은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한다. 위험에 대한 정보가 있더라도 공개되지 않아 정작 사람들이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아졌다. 심지어 위험한 사고가 발생한 후에도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유해물질로 인한 영향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든 경우들도 있었다. 이런 경험과 역사가 유해물질 및 폐기물을 관리하거나 처리하는 문제를 인권으로 다루게 했다. 알 권리(또는 정보에 대한 권리)는 표현의 자유로부터 도출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 딛고 사는 땅, 먹는 음식 등 모든 것과 관련된다. 건강, 생명, 환경에 대한 권리에도 필수적이다.
유해물질 알 권리 특별보고관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2015 화학물질 피해실태 시민보고대회>를 열고 다양한 인권침해 현실을 보고했다. 삼성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전자산업 노동자가 겪는 건강 문제, 불산누출사고 등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가 증가하는데도 알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법의 한계, 사망자만 벌써 142명이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현황, 원자력발전소나 석탄화력발전소, 각종 공장이나 미군기지 인근 지역의 피해 사례 등이 보고되었고 변화를 위한 요구가 제시되었다.
아무 정보나 알려줘도 알 권리 실현?
정부 역시 한국의 관련 권리 현실을 알렸다. 유해물질 알 권리 특별보고관은 방한에 앞서 정부에 질의를 보냈다. 권리 현실을 짚어보려는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답변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있으며 법에 따라 정보가 공개되고 있다, 현행 법제도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알 권리를 보장하며, 알 권리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는 답변이다. 알 권리에 접근하는 시민사회의 시선과는 전혀 다르다.
지난 9월 열린 30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유해물질 알 권리 특별보고관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알 권리의 규범적 내용이 담겨있다. 인권이사회 회기 중 열린 상호대화에서 한국 정부의 질문에 답했던 것처럼, 건강과 안전 관련 정보는 비밀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보고서에서 짚고 있다. 알 권리와 관련된 정보는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유용해야 한다. 신뢰할 만한 최신 정보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살필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수집되어야 한다. 둘째,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찾고 구하고 받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기능해야 한다. 유용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으로 알 권리가 보장되거나 실현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정보가 위해를 예방하지 못한다면, 민주적 의사결정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책임을 분명히 밝히지 못한다면, 정의와 효과적 회복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알 권리로서 기능하는 정보가 아니다. 넷째는 비차별 원칙이다. 유해물질이나 폐기물의 영향은 불균등하므로 그것을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한 정보도 나이, 소득, 인종, 성별 등을 고려하여 수집되고 분석되어야 한다.
유해물질 피해,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유해물질 및 폐기물로 인한 피해를 인권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밝혀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해물질 알 권리 특별보고관이 알 권리의 내용을 세세하게 짚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정부 답변에는 사람들이 충분히 알고 있는지, 정보들이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등 유의미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기업들이 유해물질 관련 정보를 충분히 알리고 있는지 등 본질적인 내용이 언급되지 않는다. 권리 실현을 위한 어떤 법제도도 권리 주체가 처한 현실로부터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무시하거나 부인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국가가 직접 유해물질의 관리자인 경우만 보더라도 정부의 문제는 분명하다. 방사성물질이 계속 검출되고, 원전 주변지역 여성의 갑상선암 발생비율이 대조군보다 2.5배 높게 나타나지만 위해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변화는 없다. 기업이 취급하는 물질에 대해서도 정부는 정보를 수집하거나 공개해야 할 의무를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정보의 공개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에 갇혀있다. 2013년 환경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히 대기업은 취급하는 물질의 92.5%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험을 막기 위한 민주적 의사결정이나 참여는 언감생심이다.
주거지역에 공장이 들어서는 것도 규제하지 않고, 어떤 위험이 잠복해있는지도 알아내지 않는다. 위험이 알려지더라도 인권적 관점에 따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정부에 의해 강제 수거되고 사실상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개별 소송으로 각자의 피해를 해결해야 하고 기업의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는 구상권 청구를 전제로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불산누출사고와 같은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떨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인권적 접근은 없다. 책임을 밝히기는커녕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정의를 방치한다. 노동자와 주민들을 동의하지 않은 생체실험의 대상자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켜켜이 쌓이는 억울함과 원통함이 사라질 리 없다.
피해자의 목소리로부터 인권의 증언을 읽어내기
미나마타병이 번져가는 마을의 풍경을 마주하며 이시무레 미치코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박한 말들로 써 내렸다. 질소공장 앞으로 몰려간 주민들의 시위와 함께 『슬픈 미나마타』는 문제를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는 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우리는 ‘유해물질 알 권리’라는 말을 가지게 되었다. 오는 24일 창립 70년이 되는 유엔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말이다. 권리의 말들에 70년 시간의 무게가 실렸을까. 한 권의 책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을 북돋고 있는지 자신하기 어렵다. 새로운 미나마타병들은 아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유엔인권기구는 인권의 원칙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러나 강대국 중심의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70주년을 맞아 ‘강한 유엔, 더 나은 세계’라는 모토를 내건 유엔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권의 원칙과 현실의 괴리에 주목해야 할 텐데, 어쨌든 유엔의 몫이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며 유엔과 함께해왔다고 연설한 박근혜 대통령도 인권의 말들을 알아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정보는 수집하지도 알리지도 않으면서 개인의 내밀한 정보는 부당하게 수집하고 감시하는 정책들이 인권에 역행한다는 것만 알아도 좋을 텐데, 어쨌든 정부의 과제다.
인권의 말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인권의 힘은 규범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규범을 디딤돌 삼아 행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우리, 먼 훗날 밝혀질 어떤 병의 증거가 되지 말자. 오히려 위험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고 조직하고 감시하고 관리와 처리를 설계하는 권리 주체가 되자. 우리의 손에 쥔 ‘유해물질 알 권리’를 빼앗기지 말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인권의 규범은 앞서 겪은 사람들의 증언이 응축해 만들어진 결정체다. 유해물질 알 권리 특별보고관이 한국에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보고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