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는 15일 2년여간의 활동에 대해 대국민보고회를 열고 계속적인 진상규명을 위해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의문사위는 "이 기구는 의문사 사건 뿐 아니라 고문 및 가혹행위, 불법투옥, 실종, 정치테러 등 정부수립 이후 자행된 인권침해의 총체적인 실상을 규명하기 위해 광범위한 조사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존의 국가기관으로부터 제약당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자료접근 및 수집, 관련자의 소환 등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조사권한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의문사위의 부족한 권한과 촉박한 조사기간 때문에 충분히 조사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추가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상범 위원장 등 이날 보고회 참가자들은 위원회의 활동은 종료된 것이 아니라 권한을 강화하는 법개정을 통해 계속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50년 전 반민특위 활동이 반민주, 반민족 세력을 처단하지 못했던 것처럼 의문사위의 활동이 지금 중단된다면 그나마 얻어낸 민주화의 성과도 반격당하는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가족들의 4백22일간의 국회 앞 천막농성의 결과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아래 의문사법)은 2000년 7월 공포됐다. 이후 의문사위는 접수받은 진정사건 외에도 삼청교육대, 인혁당 사건, 옥사사건, 행방불명 등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해 지난 9월 16일까지 총 83건에 대해 조사했다.
의문사위가 그동안 조사한 참고인은 총 6천5백36명이며, 모두 11명에게 동행명령이 발부됐으나 전두환 등 7명이 이를 거부해 과태료가 부과됐다. 83건중 의문사로 인정된 사건은 최종길 사건을 비롯 총19건이며 기각사건은 총33건, 진상규명 불능 사건은 30건에 이른다.
진상규명불능사건과 관련 의문사위의 안병욱 위원은 그 원인으로 △기무사와 안기부(현 국정원)의 문서 비공개 △핵심적인 사건관련자의 증언거부 △조사기간의 부족 △최단5년에서 최장31년 이상 경과된 사건으로 많은 단서들과 관련자료들이 인멸된 점 △조사권한 미비와 인력부족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안 위원은 △조사권한 강화와 위원회의 준상설기구화 △자료조사권 강화 △조사관 양성 △내부고발자 보호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덕우 변호사는 위원회가 사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변의 주장에 대해 "위원회에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 위헌 시비는 사라질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국제사회처럼 정의를 위해 반인도범죄에 대해선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회대 정해구 교수는 "민주화운동을 안 했다고 의문사가 아니냐"며 "의문사의 개념이 협소해 죽음에 대한 불평등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유가족대책위원회 허영춘 씨는 "자살이라도 가족들에게 그 사유를 납득시켜야 하는데 위원회가 내부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니 불신이 쌓인다"며 실망을 드러냈다. 또한 "2기 위원회가 구성되면, 공무원들도 조사에 전념하도록 파견이 아닌 전출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은 "혁명적 성격을 가진 의문사위가 한계를 갖는 것은 일부 가해자들을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는 현정부의 성격에 기인한다"며 "개혁적이고 민주적 정권 없이 참된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조선일보 등이 위원회의 활동을 축소․왜곡 보도할 뿐 아니라 방해하기도 했던 점을 보고서에 꼭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