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병원노동자, 성탄절 맞아 2박3일 노숙농성
"파업전야제부터 오늘까지 마음은 똑같다.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노조와의 교섭에 나서고,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성탄 전날인 24일 오후, 십자가를 가슴에 모아 들고 명동성당 둘레를 돌던 강남성모병원 조합원 오선영 씨는 이렇게 말한다. 여의도성모병원 조합원 한 모씨도 바람은 한가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5월 23일 시작된 가톨릭 중앙의료원(강남·여의도·의정부 성모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은 24일로 이미 7개월을 넘겼다. 그러나 파업 전부터 지금껏 병원 측은 한번도 교섭에 임하지 않고 있다. 9월 11일 경찰력의 투입으로 농성 중이던 병원에서 끌려 나온 후, 조합원들은 명동성당에 농성의 터를 잡았다. 지난 11월 15일엔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을 위해 명동성당 서울대 교구청 내 천막을 자진철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직권중재조항이란 악법에 기대 '무조건 현장복귀'만을 고집하며 개별적으로만 조합원들을 만날 뿐이다.
"서로 생채기도 많이 남겼지만 이젠 성탄절을 맞아 사랑의 마음으로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노조를 인정했으면 한다"며 오 씨는 말을 잇는다. 가톨릭중앙의료원 4백여명의 조합원들은 23일부터 출퇴근 투쟁이 아닌 2박 3일 철야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성탄절 전에 타결을 기원하는 절박함에 따른 것이다. 노숙농성이라지만,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천막도, 스티로폼도 없었다. 오씨는 "어제 밤에 비가 많이 와서 비닐을 덮긴 했지만, 조합원들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걱정을 한다.
그간 겪어온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비하면 하루 밤 비 맞는 것은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 "가톨릭 신자여서 가톨릭 사업장들에 이래저래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힘든 싸움한다고 한다.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일부러 노동조합을 깨려고 하는 것이 현실에서 느껴지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끝까지 가톨릭을 믿고 싶은 것"이라며 강남성모병원에서 10년 째 일해온 전모 씨는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같은 병원에서 영양과 조리원으로 10년 째 일해 온 유해영 씨는 "월드컵 지나면, 달라지겠지, 추석 지나면 달라지는 게 있겠지, 매번 희망과 절망을 넘나들었다"고 말한다. "마이너스 대출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며 한 씨는 덧붙인다. 7개월을 지나는 동안 1천5백명이었던 파업 참가자가 4백명으로 줄었다. 이들이 파업 대열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엔 노조에 '노'자도 몰랐는데,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거 알았다"고 유씨는 설명한다. 또 다른 전모 씨는 "나도 가톨릭 신자긴 하지만, 희생만 요구하는 게 직장인가 싶다. 병원 측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복귀하면, 반성문을 써야 하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문제제기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혹한 속 노숙농성에도, 병원 측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오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들 마음에 불안감 있을텐데, 애써 외면하고 있을 거다. 진정한 가톨릭이라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는다. 근데, 정말 답이 없다면 내일부터 또 다시 시작해야겠지."라고 말한다. 명동성당을 도는 노동자들을 향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노래가 흐르자, 오 씨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