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특허청, 백혈병 환자 두 번 죽였다"

근거없는 글리벡 강제실시 불허 비판 거세


특허청이 백혈병 환자들의 생명을 외면했다. 민중의료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등 보건의료단체들이 특허청을 상대로 청구한 백혈병 치료약 글리벡의 강제실시에 대해 특허청이 지난 3월 4일 불허 결정 통보서를 보내온 것.

지난해 1월 30일, 보건의료단체들은 글리벡의 독점적 생산·공급체인 노바티스 사가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턱없이 높은 약가를 책정하고 그로 인해 병원과 약국에서 공급을 기피하고 있는 현실을 들어 특허청에 글리벡의 강제실시를 요구했다. 특허법상 '통상실시권 설정에 관한 재정'으로 규정돼 있는 강제실시가 허용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상업적 목적으로'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다른 업체로 하여금 이 약을 생산하게 하거나 외국에서 복제약을 들여올 수 있게 된다. 현재 인도의 제약회사가 공급하는 카피약의 가격은 한 정에 1,200원으로 2만원이 넘는 글리벡 가격의 약 1/57에 불과하다.

그러나 특허청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이 전염성이나 기타 급박한 국가적, 사회적 위험이 적다는 점 △강제실시를 허용할 경우 독점적 이익을 인정하여 발명의식과 기술개발 등을 촉진하고자 한 특허제도의 기본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 △환자의 실제 부담액이 약가의 10% 수준인 점 △글리벡 공급이 현재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며 자기치료 목적의 수입이 가능한 점 등을 근거로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특허청의 결정에 대해 백혈병환우회와 글리벡 공동대책위원회 등을 비롯한 보건·인권단체들은 14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환자를 두 번 죽이는 강제실시 불허 결정'을 내린 특허청을 규탄했다. 이들은 "이번 특허청의 결정은 환자의 약가 부담 상황과 글리벡의 공급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충분한 실사조차 하지 않은 채 내려진 것"이라 주장했다. 보건복지부의 정책으로 본인 부담이 어느 정도 인하되고 보험적용이 확대되기는 하였지만, △초기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에게는 보험적용이 전혀 되지 않고 △일부 고형암 환자들 4백여
명의 경우에는 한달에 많게는 700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지불해야 하며 △글리벡을 판매하는 곳이 적어 환자 개인이 약을 찾아 전국을 헤매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남희섭 변리사도 "특허청이 내세운 근거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특허청의 잘못된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남 변리사는 "강제실시는 전염병 확산과 같은 국가적 위험 상황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허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기치료 목적으로 약을 개인적으로 들여올 수 있다는 말은 개인이 안정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약을 위험을 무릅쓰고 알아서 복용하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며 "이는 특허청이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적 책무를 내팽개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이번 특허청의 결정이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거치지 않고 잘못된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 탓에 '특허청이 제약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불허를 이미 결정해 놓은 상태에서 국민적 반발이 다소 무마되길 기다렸다 1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불허 통보를 보내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조만간 특허청의 결정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